▲술을 빚어 함께 나눌 사람이 있다면
허시명
집술은 오래도록 밀주의 시대를 지나왔다. 정확하게는 1934년부터 1995년까지 집에서 술을 빚는 것은 불법이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내려진 집술의 '암흑기'였다. 조선시대에는 양조장이 없었다. 술은 집에서 빚거나, 주막에서 빚는 발효 음식의 한 가지였다. 술이 상품화되고 주세를 엄격히 부여하기 시작한 것은 1909년 주세법이 생겨난 뒤의 일이다.
지난 61년 동안 내려진 집술 금지령은 일제 강점기 총독부의 통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정략적 차원에서 시작됐고, 전쟁과 전후 복구와 군사정권의 시기를 거치면서 연장돼 왔다. 세원 포착이 가능한 양조장 중심의 상품 술만 유통케 하고, 집술은 금지했다. 이 금지령은 시민 생활권의 규제로 간주돼 1995년에 자신이 소비하는 술은 직접 빚을 수 있게 되면서 풀리게 됐다. 그렇게 집술이 등장한 지도 20년이 흘렀다.
집술의 등장은, 요즘 부는 집밥 열풍과도 비교해 볼 만하다. 직장인들의 쫓기는 삶 그리고 맞벌이 부부와 독신 생활자의 증가가 집밥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방송 채널마다 다투듯이 편성하는 '먹방 프로그램'은 이런 세태를 반영한다. 누구나 쉽게, 냉장고의 재료를 꺼내 간단하게 집밥을 차릴 수 있다는 것은 많은 행복을 담고 있다. 여기서 집밥은 엄마의 밥으로 회귀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해먹는 새로운 노동의 발견이기도 하다.
예전에 집에서 빚던 술의 큰 목적은 '봉제사 접빈객',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 찾아온 집술 바람은 다르다. 내 몸의 일부가 되는 음식을 내가 직접 해 먹겠다는 정신이 담겨있고, 술을 통해서 자기를 표현하려는 희망이 담겨있다.
감미료로 맛을 내거나, 규격화되고 대량 생산되는 맛의 단조로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소비자의 욕구도 담겨있다. 어찌 보면 생산자와 소비자로 분명하게 분리되어 있는 세계를 깨려는 의도도 담겨있다. 이를 통해 집술은 자기 표현이자, 다양한 맛을 추구하려는 취미의 영역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술 빚기는 어렵다? 그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