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되어 새로 시음장을 마련했다.
허시명
"왜 술입니까?"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간결하게 대답한다. "술은 제게 인생이죠." 술을 유통하고 만들면서 한순간도 고통스럽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20년이 넘도록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녀에게는 지친 기색이 없다. 그녀는 "돌아보면 모두 추억이죠"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성취감을 느낄 만한 순간들이었음을 그녀의 부드러운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홍승희 대표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상도의(商道義), 즉 신의(信義)다. 암묵적으로 영업 구역이 구분돼 있던 시절의 일이다. 유통을 할 때도 영업 사원이 다른 구역에다가 술을 배달하고 오면, 당장 찾아오라고 했다. 다음날 찾아오겠다고 하면, 당장 찾아오라고 했다. 명절 때 직원들이 고향을 가고 없을 때, 막걸리 한 상자 주문이 들어오면 택시를 타고서라도 직접 배달하기도 했다.
양조를 하면서는 또 다른 신의가 생겼다. 그녀는 고개 너머 마을 원류 방앗간에서 도정한 유기농 작목반의 쌀을 사다가 쓰고, 동로면의 오미자를 사서 쓴다. 간혹 값이 더 싸고 색깔이 좋은 오미자 원액을 사서 쓰라고 권하는 이들이 찾아온다. 그녀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오미자를 사용하지 않는다.
좋은 원료와 좋은 품질이 자신이 소비자에게 지켜야 할 신의라고 생각한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녀는 식품사업은 돈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문을 남기려 들고 경쟁을 하다 보면, 좋지 않은 재료를 쓰게 되고 넣어서는 안 되는 것을 넣는 일이 벌어진다고 했다.
그녀의 생은 술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홍 대표는 오미자 막걸리가 자리를 잡게 되면서, 이문이 하나도 남지 않더라도 오미자 막걸리를 빚어야만 하는 운명이 됐다고 말한다. 그녀의 술을 가져가는 대리점이 살아야 하고, 그 술을 파는 매장과 음식점이 또 먹고 살아야 하니, 그녀는 술을 포기하지 않고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서 문경새재 매장에서 오미자 막걸리 배달이 조금이라고 늦으면 난리가 난다고 자랑했다.
늦게까지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서 '아마도 그녀의 생은 술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상투적이지 않고, 속되지 않다. 술은 사람을 취하게 하고 속되게 만들기 쉬운데, 그러지 않는 버팀목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그 버팀목을 나는 그녀의 첫술에서 본다. 술을 빚어 양조장과 세상의 경계에다가 올리는 첫술에서 보고, 생막걸리에 처음으로 과일을 넣어 면허를 낸 뚝심의 첫술에서 보고,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생에 처음 마신 주전자에 담긴 아버지 막걸리의 맛에서 본다.
그녀의 첫술에 그녀의 생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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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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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주전자 막걸리, 그녀의 인생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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