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틴토레토, ‘최후의 만찬’, 베네치아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 지금까지의 모든 ‘최후의 만찬’과 는 전혀 다른 형태의 작품입니다.
박용은
만찬이 이루어지고 있는 장소도 특별합니다. 기존의 작품들이 '최후의 만찬'이라는 주제의 성스러움 때문에 소박하지만 잘 정리되어 있는 곳이나 (특히 베로네세의 경우처럼) 아예 귀족 취향의 화려한 곳을 배경으로 한 것에 비해 틴토레토의 만찬장은 어둡고 복잡한, 서민들의 삶의 공간입니다. 그러다보니 만찬의 시간에 맞게 조명도 어둡습니다. 예수와 제자들의 몸에서 나오는 광배를 제외하면 천장의 화롯불이 거의 유일한 조명인데 그 희미한 빛으로는 작품 전체를 밝히지 못합니다.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어둠 속의 '최후의 만찬'인 셈입니다.
그래서 기존의 작품들과 달리 인물들의 심리 역시 표정이 아니라 동작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연극의 한 장면처럼 말이죠. 실제로, 얼핏 보면 예수와 제자들이 무대에서 연기를 하고 화면 오른쪽의 평범한 인물들이 객석에서 그 장면을 관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천장의 화로에서 나온 연기들이 천사로 변한 것은 인물들의 광배와 함께 이 그림의 신성함을 드러내는 틴토레토 특유의 기법이죠.
르네상스 최후의 거장이자 베네치아 화파의 최후의 거장이기도 한 틴토레토. 그는 흔히 '미켈란젤로의 드로잉과 티치아노의 색채'를 본받으려 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실제 그의 수많은 작품들에는 그 두 거장의 흔적들이 보이죠. 그런데 일흔을 훨씬 넘긴 틴토레토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인 이 '최후의 만찬'을 통해서 르네상스 미술이 지향했던 그 모든 가치들과의 결별을 선언한 것처럼 보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 것이지요. 그래서, 흔히 매너리즘이라는 틀로 틴토레토를 규정하기도 합니다. 물론 매너리즘의 대가, 틴토레토도 어느 정도 타당한 평가입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 중에는 꼭 그렇게만 볼 수 없는 것들도 많습니다. 이 작품 '최후의 만찬'도 마찬가지죠.
늘 비판과 야유의 대상이 되어 왔던 매너리즘. 아니 재능에 비해 늘 야박한 평가를 받아왔던 틴토레토.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이후 여러 차례 그의 작품을 만나고 나니 과연 그 평가들이 합당한지 의문이 듭니다. 이틀 후 만날 '산 로코 대 신도 회당'이 다시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틴토레토를 만난 뒤, 주 제단 뒤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종탑에 오릅니다. 그러고 보니 이탈리아의 각 도시들을 방문할 때마다 반드시 치러야 하는 의식처럼 높은 곳에 올랐습니다. 마땅히 오를 만한 곳이 없었던 로마를 제외하고 오르비에토, 피렌체, 산 지미냐노, 시에나, 아시시, 피사, 볼로냐, 밀라노, 토리노, 코모, 베로나 등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올랐지요. 도시와 자연 환경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풍경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미술 작품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