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아침의 소 운하낡은 벽돌 건물들 너머로 떠오른 아침 햇살이 역광을 이루며 은은하게 수로를 비추고 있습니다.
박용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맞은 베네치아의 아침은 생각보다 조용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연인과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 되어버린 우리의 크리스마스. 하지만 유럽의 크리스마스는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날이란 말이 맞나 봅니다.
언뜻 베네치아에서 맞는 크리스마스는 무척 낭만적일 거라 상상됩니다. 나 역시 이탈리아에 오기 전 한국에서 여행 일정을 짜면서 그런 '낭만적 크리스마스'를 꿈꾼 게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이 '미술 기행'을 떠나온 나에게는 그다지 썩 좋지만은 않습니다.
어차피 홀로 떠나온 여행이고, 낭만을 누릴 여유가 많지 않은 촘촘한 일정입니다. 더구나 크리스마스날엔 대부분의 성당과 박물관이 쉬는 탓에 일정을 짜기가 오히려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수상버스인 바포레토를 타고 베네치아 곳곳을 누빌 예정입니다. 그 첫 일정은 베네치아의 부속 섬들인 '무라노섬'과 '부라노섬'입니다.
호텔에서 '무라노섬'으로 가는 바포레토를 타기 위해서는 30분 가량 걸어서 바포레토 승강장까지 가야 합니다. 물론 가까운 승강장에서 바포레토를 타고 환승을 해도 되지만 베네치아의 아침 거리를 걷는 즐거움을 놓칠 수는 없습니다. 미로 같은 베네치아의 거리. 오늘은 어제만큼 허둥대지 않고 구글맵을 적절하게 이용하며 길을 찾습니다.
도중에 수시로 나타나는 작은 다리들, 그 위에 설 때마다 버릇처럼 좌우를 둘러 봅니다. 구비구비 크고 작은 수로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미술 작품입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니 어느새 어젯밤 정신없이 건넜던, 다리 중의 다리, '리알토 다리(Ponte di Rialto)'가 눈앞에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