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이 착용한 "Pagdi" 는 결혼식 때 (왕의 모자로도 불리운다) 쓰는 모자로 영광스럽고 성스러운 의미를 부여한다. 신부의 이마와 머리 경계선에 묻어있는 빨간 염료는 혼인을 한 여자를 상징한다. 코에 있는 빨간 표시는 이마에 염료를 바르던 중 실수로 묻어버린 자국이다.
정수지
오늘은 우리가 머무는 호텔에서 식이 있을 예정이었다. 조식 후, 2층에 위치한 식장을 방문했더니 꽃과 리본으로 장식된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작은 신전을 연상시키는 예식 장소가 눈에 띄었다. 정사각형 모양의 단에는 화려한 문양의 카펫이 깔려있고 골조가 훤히 드러난 나무 지붕 위에는 생화로 엮은 줄이 커튼처럼 매달려있다.
예식을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놓아둔 쿠루티 아버지의 영정사진도 인상깊었다. 분명 쿠루티 집 거실에 걸려있던 사진인데 오늘 딸의 결혼을 지켜볼 수 있도록 특별히 옮겨진 듯하다. 고인의 사진이 놓여진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진 않지만, 이상하게 실제로 지켜보고 계시다는 기분이 들었다. 부재를 존재로 바뀌어놓는 사진 한 장의 위력이 사뭇 대단하게 느껴졌다.
한참 이동식 스튜디오에서 사진 촬영 중인 산디. 번쩍이는 금색재킷에 화려한 장신구가 박힌 터번을 쓰고 있던 그는 마치 왕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산디의 촬영을 구경하는데 쿠루티의 사촌들은 우리를 찾고 있었다며 얼른 옷을 입으러 가자고 재촉했다.
"오늘 사리 입기로 했잖아. 안 입을 거야?"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나와 델핀을 위해 사리(직사각형의 긴 천)를 챙겨왔다며 쇼핑백을 흔들거렸다. 우선 옷은 스카프를 제외한 전날 입었던 드레스를 다시 입어야 했다. 어떤 신발을 신을 거냐며 굽 높이도 확인했다. 신발과 치마 사이가 낮을수록 좋다며 사리를 다리 길이에 맞춰 재보았다.
그리고 원래 입고 있던 치마 안으로 사리를 밀어넣어가며 한바퀴 감싸버린다. 천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배꼽 정중앙 밑에 다시 사리를 조여가며 밀어넣기를 반복. 그렇게 하고도 굉장히 많이 남았던 천을 여러번 주름 잡아가며 왼쪽 어깨 위로 올려 띠처럼 둘러메었다.
한 번 봐서는 따라할 수 없는 복잡한 착용법이지만 단조로운 옷감의 예술적인 변화가 놀랍기만 했다. 더 신기했던 건 사리를 입는 방법이 굉장히 다양하다는 것인데 그 중에 우리는 가장 기본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치마 위에 둘러진 사리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옷의 자태가 망가지지 않도록 옷핀으로 고정도 시켰지만 조심히 움직여야 했다. 바닥에 닿을 듯한 풍성한 옷감에 걸려 넘어지진 않을까 보행마저 얌전하고 정숙하게 변해갔다. 내 몸을 내 맘대로 하는 게 힘들어졌다. 어떻게 이 옷을 입고 사람들이 춤을 춘 거지? 이 아름다운 천 한폭에 꼼짝없이 갇혀버린 느낌이 들었다.
채비를 마친 뒤에는 쿠루티 사촌들을 따라서 2층 식장이 아닌 1층 호텔 로비로 갔다. 입구 쪽에는 많은 하객들이 모여있고 10여 분이 지나자 꽃으로 치장된 차 한 대가 들어왔다. 정차 된 차 안에서는 산디가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내렸다.
"여기서부터 신랑입장이야!" 친절히 결혼의 시작을 알려주던 산디의 처남. 차를 타고 온 이유에는 신부를 만나러 간다는 의미가 있었다. 산디와 하객들의 행렬은 2층까지 이어졌다. 식장 입구에서는 쿠루티의 가족들이 산디를 맞이해준다.
어제 집 안에서 종교 의식을 진행하시던 할아버지도 접시에 있는 염료와 가루를 찍어서 산디의 몸과 얼굴에 바르기 시작했다. 쿠루티의 어머니도 작은 물병에 손을 적셔 물을 뿌리고 테자스는 산디에게 화환을 걸어주었다. 각기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굉장히 환대하는 느낌이 강했던 세리머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