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만이결혼원정기
우금치
무엇이든 혼자 하는 게 익숙해진 내게, 어디를 가나 스마트폰만 줄곧 보고 있는 사람뿐인 이 사회에서, 서로를 마주한 채 보는 공연. 그 풍광이 낯설기 그지없다. 하지만 웬일인지 어색하지 않은 건 다 저 능청스런 배우들 때문이리라.
이날 밤, 파편화된 기계의 부품 같은 차가운 삶에서 배우의 열기와 관객의 열기가 만나 사람을 데우는 마당극을 봤다. 사람을 한데 모으는 마당극이다. 마당극은 살아 있었다.
마당극패 우금치를 찾아가다대전광역시 중구 대흥동, 마당극패 우금치 연습실. 한눈에 봐도 열악한 텅 빈 공간에 커다란 거울 두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배우들은 다음 날 공연 '청아 청아 내 딸 청아'를 연습 중이다. 배우이자 극작가이며, 연출가인 류기형 대표가 홀로 의자에 앉아 배우의 연기를 물끄러미 보고 있다. 무엇 때문인지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심 봉사와 뺑덕 어멈 그리고 심청이를 데려가는 상인이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며 대사를 한다. 심청이는 인당수에 빠졌다가 살아나 왕비가 되고 우여곡절 끝에 심 봉사와 다시 만나며 연습이 끝났다.
류기형 대표가 "잔소리시작 한다"고 하자, 배우들이 모두 바닥에 앉아 볼펜을 잡고 수첩을 꺼내 든다. 대표는 배역 하나하나를 분석하며 직접 연기를 해 보인다.
"다들 전체적으로 약해. 정성을 더 해야지. 표정도 몸 동작도 더 크게 과장되게 해야 해. 여기서 죽어라 해야, 그렇게 해야 관객에게 조금이라도 전달되는 거야… 약해졌어, 다들. 초심으로 돌아가야지, 초심을 잃지 말자고!"흰머리가 드문드문 한 중년의 단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엊그제 한 일도 기억나지 않는 속도의 시대에, 초심을 강조하는 연출가와 수긍하는 배우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1990년 창단했고 지금은 2015년이다. 이들은 25년 동안 무엇을 놓치지 않으려 애써왔던 것일까?
회의가 끝나자 모두 식사를 준비한다. 연습실 바닥에 여러 개의 상을 붙이고 함께 둘러앉는다. 점심은 밥 당번이 마련한 돈가스가 주 반찬이다. 예술공장 두레에서 보내 준 마늘 장아찌도 상에 오른다. 소박한 밥상은 허리띠를 팍 조른 살림을 엿보게 했다.
식사를 마치고 이날 이곳에 온 목적, 마당극장 '별별마당'으로 간다. 어떤 곳인지 보고 싶었다. 별별마당을 마련하기 위해 우금치 단원들이 큰 빚을 냈다는 소문만 들은 까닭이다.
길 안내는 막내 배우 김연표님이 맡아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대전의 오래된 거리를 걷고 있다. 한때는 번창했을 구 도심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