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웃지 않던 무슬림 여자아이가 사진기 앞에서 살포시 웃었다.
송성영
한 달 가까이 똑같은 길을 걷다보니 낯설기만 했던 인도나 한국이나 사람살이가 크게 다르지 않게 다가온다. 익숙해진 북인도 코사니의 시골 풍경이 내가 자란 어린 시절의 고향 길이나 다름없이 다가온다. 해가 뜨기 시작하자 아낙네들은 가축들에게 먹이를 준다. 어제 저녁 나뭇가지를 쳐서 한 짐 준비해둔 나뭇잎들을 소와 염소에게 나눠 주고 있다.
아침 준비가 한창인 어떤 집에서는 흰 머리의 할머니가 쭈글쭈글한 손으로 어린 손녀의 머리를 빚어주고 있다. 손전화기 시계를 보니 이제 여섯시 반이다. 오늘은 학교에 가질 않는 공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여느 때의 아침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 큰 딸아이가 여럿 있는 제법 큰 집에서는 라디오 혹은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로 요란하다. 여자들이 아침 준비를 할 무렵 남자들은 부스스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어가며 집 앞 의자에 걸터앉아 할 일없이 하품을 하거나 두 눈을 끔뻑거리며 칫솔질을 한다. 저만치 외딴 집에서는 잠에서 덜 깬 꼬맹이의 앙앙 울어대는 소리와 야단치는 엄마의 목소리가 뒤엉켜 들려온다.
길가 집 발발이는 밥값이라도 하겠노라 깽깽깽 짖어대고 온갖 새들은 때늦은 자명종처럼 심란하게 목울대를 흔들어 댄다. 그렇게 히말라야 설산이 바라 보이는 북인도 올드 코사니의 하루가 반복되고 있었다.
여행길은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작별을 의미한다. 늘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길 따라 어디론가 정처 없이 떠나듯 오늘은 아스팔트길을 벗어나 좀 더 깊숙한 신작로 길로 접어든다. 낯선 인도 땅이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무작정 걷고 또 걷는다. 그 길에서 먼지가 풀풀 날리는 어린 시절의 신작로 길을 만난다. 비포장 길로 걸어들어 가면서 나는 점점 과거로 깊숙이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 길목에서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빼닮은 아이들과 내 친구들과 이웃들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