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길을 오르다가 무릎이 심하게 꺾여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송성영
북인도 코사니에서 머물기로 작정한 날짜를 일주일도 채 남겨놓지 않고 고통이 총체적으로 몰려왔다. 창자가 뒤틀리고 온몸을 장침으로 쑤셔 대는 듯한 고통과 함께 오한이 몰려왔다. 온몸으로 휘감아 오는 통증을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는지 버텨 보겠다며 만용을 부렸다. 매일 산책을 나서던 내가 이틀 내내 코빼기도 보이지 않자 간디 아쉬람에 묵고 있는 가텀씨가 찾아와 약을 권했지만 나는 건방을 떨며 말했다.
"통증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입니다."
낮에는 그나마 견딜 만했다. 어둠이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밤이 되면 식은땀을 흘려가며 쓰려지듯 잠들었다. 이틀째 밤이 되자 창자가 찢겨나가는 듯했다. 이러다가 죽는 것이 아닌가 싶어 약에 대한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배낭을 뒤적거렸다. 하지만 오만방자하게도 한국에서 배탈이나 두통에 좋다는 상비약을 준비해 오지 않았다. 외상에 대비한 물파스와 후시딘, 밴드, 소독약 정도가 상비약의 전부였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과도를 꺼내 손톱 주변을 그어 피를 내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온몸을 휘감고 있는 통증을 주시해 가며 호흡을 가다듬어 보고 급기야는 손가락을 입안 깊숙이 집어넣어 강제로 위장을 비워내는 시도를 감행했으나 이틀 내내 먹은 게 별로 없다 보니 그 조차 효과가 없었다.
민박집 주인에게 약을 구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몸이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통증을 잠재워 줄 만한 약을 복용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만 반복적으로 떠올랐다. '대체 이 통증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를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고 있었다. 혼미한 의식 속에서 답이 떠오르지 않는 원인을 찾다가 '이대로 죽는 것인가' 죽음을 코앞에 둔 사람처럼 혼자서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기절하듯이 잠들었고 눈을 떠 보니 아침이었다. 다섯 시 삼십분, 매일 일어나는 그 시간에 정확하게 일어나 있었다. 내가 살아있나? 비틀비틀 일어나 본능적으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 퀭한 눈빛의 내가 있었고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져 있었다. 내가 죽은 것이 아니라 통증이 죽어있었다.
창자가 뒤틀리고 온몸이 쑤시는 고통 속에 보낸 나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