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중 한 장면.
위드시네마
유죄를 인정하면 바로 풀려나고 벌금형 정도로 끝이 난다. 반대로, 혐의를 부인하면 유치장에 갇히게 되고 1년 넘게 재판을 받아야 한다. 더구나 무죄가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청년은 승소 가능성이 희박한 법정 투쟁을 선택한다. 험난한 여정과 고난이 닥치리라는 점은 불 보듯 훤하다.
이는 2007년 개봉돼 주목을 받았던 일본 법정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줄거리다.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죄 없는 한 사람을 벌하지 마라.' 서두에 이 자막을 띄운 영화는 2시간 반 동안 무죄추정의 원칙이 무시되는 일본 사법 현실을 담담하게 고발한다.
이게 어디 일본만의 일일까. 0.1%까지는 아니더라도 낮은 형사사건 무죄율에, 종종 무죄추정의 원칙이 외면되는 사정은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일본이 아닌 한국, 영화가 아닌 현실로 눈을 돌려보자.
만일 당신이 영화 속의 청년처럼 무고하게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가정해보자. 억울하지만 범행을 인정하고 최대한 선처를 받겠는가, 아니면 징역형과 신분상 불이익을 각오하고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겠는가.
이런 고민을 안겨준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 치열한 공방 속에 유죄와 무죄 판결이 오갔고, 재판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김우철(가명, 35)씨의 사연이다.
[1심 판결] 결백 주장하다 고심 끝 자백, 결과는 '법정구속'"피고인을 징역 8개월에 처한다."지난 5월, 피고인석에서 판사의 판결선고를 듣던 김우철씨는 믿기지 않았다. 형량도 형량이지만, 고심 끝에 자백했는데 징역형이 선고되니 충격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김씨는 법정에서 구속돼 난생처음 교도소에 수감됐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김씨는 지난해 8월 마사지 업소에서 직원 A씨(30대 여성)를 성추행하고 폭행까지 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게다가 김씨는 A씨를 거짓으로 형사고소한 혐의(무고죄)까지 추가됐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유죄가 인정된다며 지난해 12월 기소했다. 검찰의 공소장을 간추리면 이렇다.
'김씨는 A씨에게 6만 원을 지급하고 1시간 마사지를 받았다. 이어서 3만 원을 추가 지급하고 마사지를 받던 중 김씨는 갑자기 A씨를 성추행했다. A씨가 김씨를 뿌리치고 도망가려 하자 얼굴을 때렸다. 사정이 이런데도 김씨는 "A씨가 내 성기를 만지고 추행했다"며 고소장을 제출했다.'공소장이 전부 진실이라면 김씨는 강제추행, 폭행, 무고죄가 적용돼 중형을 피하기 힘들다. 하지만 김씨는 경찰 조사 때부터 모두 완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내가 오히려 피해자고 폭행 사실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마시지를 조금 더 받으려고 했는데 A씨가 성기를 애무하여 경찰에 퇴폐업소로 신고하였고, 손을 뿌리치는 과정에서 실수로 A씨 얼굴에 손이 닿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경찰과 검찰은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김씨에게 성추행과 폭행을 당했다는 A씨와 마시지 업주 B씨의 말에 신뢰를 보냈다. 게다가 김씨가 A씨를 성추행으로 고소한 사건은 무혐의 처분이 나왔다.
모든 상황은 김씨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재판을 앞둔 김씨는 법원이 선임해 준 국선변호인과 상담을 했다. 그런데 그는 상담 직후 돌연 법정에서 모든 범죄를 자백했다.
김씨의 주장에 따르면, 국선변호사가 "수사기록이 틀렸다는 증거를 가져올 수 없으면 무죄가 나오지 않고 실형이 선고될 수 있으니까 자백하는 게 낫다"고 조언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선변호를 맡은 C 변호사는 16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자백을 강요하거나 권유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C 변호사는 "김씨와 함께 기록을 보고 토의하면서 (유무죄와 관련된) 여러 가지 말씀을 드렸는데, 김씨가 무죄 입증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자백을 하기로) 본인이 선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건기록을 직접 보고 판단해달라"고 강조했다.
어쨌거나 김씨는 자신만 기소된 상태에서 법원에서 자신의 결백이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현실적인 방안으로 자백을 선택했다. 무죄를 선고받기 어려울 바에는 차라리 자백해서 집행유예라도 받아보자는 심사였다. 하지만 김씨의 자백은 결과적으로 독이 되고 말았다.
그의 예상과는 달리, 1심 법원(서울북부지법)은 지난 5월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수사기관 조사 기간 내내 피해자를 매도하였을 뿐 피해회복을 위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고, 이 법정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범행을 자백하였을 뿐 아무런 피해회복이 없었다"면서 김씨를 법정구속했다. 뒤늦은 자백에 진정성이 없다고 본 셈이다. 김씨에게 동종전과와 집행유예 이상 전과가 없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2심 판결] 항소심 "허위 자백 가능성 배제할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