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가 채 되지 않은 이른 시간, 사람들이 카트만두 거리를 청소하고 있다.
박혜경
까마귀 소리에 눈을 떴다. 오전 5시, 드디어 아침이다. 자기 전부터 애타게, 정말 애타게 기다린 아침이 왔다. 새벽녘 추웠던 방도, 방 앞 전신주에 앉아 쉴새없이 울어대던 까마귀들도 이젠 다 괜찮다. 드디어 이 방을 나갈 날이 밝았으니까. 다행이다.
여기는 네팔 카트만두의 한 게스트하우스. 어제 체크인한 이 방은, 골목이 보이는 커다란 창문 바로 옆에 진갈색 화장대와 다홍빛 의자가 놓여 있었고, 침대 발 밑엔 빨간 플라스틱 쓰레기통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심플 그 자체. 듣던대로 '강추할 곳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숙소였다. 한국인에게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1층 벽엔 한글로 적힌 투어리스트 버스 안내문도 붙어있었다. 무엇보다 가격이 쌌다. 하룻밤에 800루피(한화 8800원).
어지러운 타멜 골목에서 이곳을 찾아 헤매던 내게 길을 알려준 사람은 다름 아닌 여기 게스트하우스 사장이었다. 인연이라면 기막힌 인연. 배가 불룩 나온 퉁퉁한 체격에 위 아래로 하얀 옷을 입은 사장은 대뜸 "미스터 김 소개로 왔냐"고 물었다. "아니, 한국 여행자들이 추천해서 왔어요." 내 대답이 맘에 들었는지, 그는 누가 소개하지도 않았는데 직접 여기까지 찾아온 너한테만 '스페셜한 가격'에 주는 거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이라고 오른손 검지를 자신의 입 앞에 갖다 댔다. 그의 팔목에선 굵은 금팔찌가 짤랑거렸다.
"너한테만 800루피에 주는 거야. 짤랑.""비싸요. 다른 사람들은 600루피에 묵었다고 하던데...""이봐 친구~ 그건 아주 아주 옛날 가격이라고. 짤랑."내가 들었던 가격보다 비쌌지만, 앞뒤로 매달린 10kg이 훌쩍 넘는 가방들이 그냥 여기에서 쉬자고 징징거렸다. 그래, 이 예산에 다른 데 간다고 특별히 다를 것 같지도 않아.
그렇게 하루치 방값을 내고, 이 방문을 열고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난 '괜찮았다'. 부실해 보이는 문고리도, 여기 저기 담뱃불 자국이 보이고 색이 누렇게 변한 변기도(물론 엉덩이를 대고 싶진 않았지만), 안 닫히는 한쪽 창문도 '다 괜찮았다'.
'호텔방 온 것도 아닌데, 이 정도면 감지덕지지. 인도에선 이보다 더한 방에서도 잤잖아.'헐렁한 문고리에 고장난 창문... 그건 약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