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철도청에 입사해 부기관사로 3년, 기관사로 14년 근무한 조종복(51)씨.
장재완
대전의 한 종합병원 원무과에서 일하던 조씨는 노조활동을 하다 해고당하고 공무원 시험을 통해 철도청에 입사했다. 지금은 철도기관사가 되려면 교통안전공단에서 시행하는 필기·기능 시험을 치르고 철도차량운전면허를 받아야 하지만, 당시에는 보통 5~7년, 길게는 15년까지 부기관사 생활을 하다가 등용시험을 통해 기관사가 될 수 있었단다.
조씨는 부기관사 3년 만에 기관사가 됐으니 남들보다 빠른 편이었다. 등용시험에 합격하면 경기도 의왕에 있는 철도대학(현 한국교통대학교)에서 12주 동안 교육을 받고, 현장 수습기간을 거쳐 기관사로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고.
단순해 보이는 기관차 운전이지만 신호와 구간에 따라 규정 속도가 다 다르다. 평탄해 보이지만 선로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단다.
"삶이 항상 평탄한 길로만 가지 않는 것처럼 열차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죠. 워낙 열차 무게가 무겁다 보니 언덕에서는 출력 조정에 신경을 써야 하고, 커브 구간에서는 더 신경을 쓰게 되죠. 그러니 항상 눈을 부릅뜨고 전방을 주시해야 해요."
이 순간 눈을 부릅떠 보이는 조씨. 그는 직장을 새로 구하면서 결혼도 늦어졌다. 철도청에 입사한 뒤에 결혼해서 지금 중학교 3학년과 1학년인 딸 둘을 두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그런가, 아빠가 낮에 집에 있으니 오히려 좋아해요. 평일에 있는 애들 행사는 거의 다 참석하고요. 밤 근무가 많다 보니 낮에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 좋은 부분도 있죠. 애들이 더 크면 싫어하려나요(웃음)."조씨의 근무표는 매달 바뀐다. 이런 변형 근로는 그에겐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한다. 출퇴근 시간이 계속 바뀌는 점이 부담스럽고, 남들과 다른 생활패턴 때문에 친구도, 친척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적지만,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 좋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가 국민의 '발'이 되어 살아온 세월이 17년. 불규칙한 근무시간, 늘 같은 길을 오가는 일이 힘들 법도 한데 조씨는 천직이라 생각한다. 아직도 열차에 오를 때면 설렌다고.
"역마살이 낀 팔자인지 원래 여행을 좋아해요. 그래서 열차를 끄는 이 일이 재미있고 좋아요.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도 보고. 일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거의 없어요. 가장 힘든 부분은 사상사고에 대한 우려죠. 저뿐만 아니라 모든 기관사들이 가장 우려하는 게 바로 그 부분이지 않을까요."자동차는 조향장치가 있어 방향을 바꿀 수 있지만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는 조향장치가 없다. 때문에 앞에 어떤 물체가 있어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급브레이크를 밟아도 기차 무게가 워낙 무겁다 보니 제동거리가 600~800m 정도는 된다.
"앞에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쪽에서 피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거예요. 거리가 500m 정도면 형체가 가물가물 보이기는 하지만 선로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분간이 안 되는데, 그냥 이상한 느낌이 와요. 그러면 속도를 줄이죠. 그래도 제동거리가 200~300m는 돼요."아직 사상사고를 경험한 적은 없지만,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비상상황 때문에 조씨는 언제나 두렵단다. 선로 주변에 울타리가 없던 시절에는 기관사 아버지를 마중 나온 아이가 아버지가 이끄는 기차에 변을 당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기관사들은 자신이 탄 기차가 들어오는 시간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달려오는 기차에 일부러 뛰어드는 경우도 있다. 기관사가 어서 피하라고 기적을 울려대지만 피하지 않고 돌아보는 이도 있다. 그런 마지막 모습을 보고 나면 그 얼굴이 오래도록 남아 힘들다고.
열차 속도 빨라졌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