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기 육식인인 제굴의 밥그릇. 제굴 자신도 민망한지 "개밥 같아요" 라고 했다. 밥보다 고기가 많다.^^;;
배지영
그때 남편이 병원에서 돌아왔다. 추석 전날, 거실 실내자전거에 걸려 넘어진 아버지는 움직이지 못했다. 구급차에 실려서 병원으로 갔다. 넓적다리뼈는 세 동강 났다. 그래서 9월 29일 오후에 수술했다. 출혈이 심해서 수혈까지 받았다. 마취가 덜 풀린 아버지는 몸을 움직이려고 했고, 주삿바늘을 빼려고 했다. 남편은 밤새 아버지 옆을 지켰다.
"아빠, 뭐 드실래요?"제굴은 물었다. 잠을 못 잔 남편은 씻자마자 안방으로 가서 누웠다. 제굴은 아침 먹은 설거지를 했다. 남편은 1시간쯤 자고 일어났다. 제굴은 "아빠, 내가 할아버지 간호할까요?"라고 물었다. 남편은 금방 대답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거동을 잘 못 하는 어머니를 건사해 왔다. 그런 아버지가 병원에서 한두 달 지내야 한다. 결국 어머니도 같은 병실에 입원.
"네가 할아버지 할머니 간호할 수 있어?""근데 병원 가서 뭐해야 해요?""할아버지 대소변 치워드리고 해야 하는데... 차라리 큰고모 먹게 밥을 해 가자." 수산리(시댁) 식구들은 절대 밥을 대충 먹지 않는다. 항상 차려서 먹는다. 아버지가 입원하고 나니까 그게 어렵다. 큰 시누이와 남편은 전날 밤에도 김밥을 먹었다. 남편은 그게 걸렸다. 나도 걸렸다. 우리 집 김치는 큰 시누이가 싹 담가준다. 꽃차남을 낳았을 때, 미역국을 종류별로 끓여서 보낸 사람도 큰 시누이였다.
제굴은 도시락 싸 가는 게 좋다고 했다. 남편은 "튀기는 요리는 안 돼"라고 했다. 신선한 채소를 곁들여 먹을 수 있으면 더 좋겠다고. 그래서 생각한 수육. 제굴은 냄비에 물을 붓고,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마늘 열 알과 양파 한 개를 넣고, 된장 세 숟가락, 쌈장 세 숟가락, 커피, 계핏가루를 넣었다. 그리고는 생협에서 사온 삼겹살을 넣고 끓였다.
"제굴아, 잡내 많이 나."옆에서 생선을 굽던 남편이 말했다. 제굴은 월계수 잎을 넣었다. 좀 당황했는지, (고기 맛을 모르는) 나보고 먹어보라고 했다. 내 반응은 하나, "맛... 있네" 뿐인데. 다행히도 남편이 괜찮다고 했다. 제굴은 끓는 물에서 고기를 건져내 반듯하게 썰어 그릇에 담았다. 양이 넉넉하지 않았다. 남편은 "밥 먹을 사람은 여섯 명이야"라면서 더 하라고 했다.
제굴은 다시 수육을 하면서 "월계수 잎을 너무 많이 넣은 것 같아요"라고 혼잣말을 했다. 진짜로 월계수 향이 진했다. 남편은 송이버섯을 볶고, 상추와 깻잎을 씻고, 배추김치를 썰었다. 새로 한 밥을 큰 그릇에 푸고는, 부족한지 안 부족한지 (하필) 나한테 물어봤다. 나는 "제굴이는 아침 많이 먹어서 별로 안 먹을 거야"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