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굴은 피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만들겠다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입맛 없는 동생이 말하니까 무조건 만들었다.
배지영
"꽃차남아, 뭐 먹고 싶어?"남편이 출장 가서 없는 평일 날 밤에 제굴은 물었다. 꽃차남은 "피자"라고 말했다. 제굴은 좋아하지 않는 피자, 한 번도 만들어본 적 없는 피자 만들기에 나섰다. 원래 피자 도우를 만들 때 밀가루 반죽을 이스트로 발효시켜야 한다는데 제굴은 곧바로 익반죽을 했다. 얇게 펴서 도우를 만드는 게 생각보다 힘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들었단다.
제굴은 반죽이 부풀어 오르지 말라고 다 만든 피자 도우에 포크로 구멍을 냈다. 그러고 나서 그 위에 토마토소스를 골고루 뿌리고, 양송이와 양파, 치즈를 올렸다. 제굴은 "엄마, 빨리 와서 사진 찍어요" 하고 나를 불렀다. "오호!" 감탄사가 나왔다. 근사했다. 우리는 오븐에서 익어가는 피자를 구경했다. 다 됐다고 '땡' 소리 나자마자 식탁에 앉았다.
"엄마, 파는 게 훨씬 맛있어요. 맛이 좀 허전하지 않아요? 그렇죠?""맛있어. 진짜 '엄지 척'이야. 엄마는 원래 피자 한 조각 밖에 안 먹는데 두 조각이나 먹었잖아. 꽃차남도 맛있다고 잘 먹었고.""아니에요. 뭔가 부족해. 근데 무슨 맛이 모자라는지 모르겠어요." 그날 밤, 꽃차남을 재운 나는 제굴이 방으로 갔다. 피자가 맛있다는 건 빈말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제굴은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와 <소년이 온다>가 어렵다고 끝까지 못 읽었으면서 <진격의 대학교>는 읽고 있었다. "생각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 좋아요"라면서 '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 대학의 자화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을 재미있다고 읽었다.
정규수업만 받는 제굴은 오후 5시 반에 집에 온다. 유치원 끝나고 놀이터에서 노는 동생을 데리고 온다. 친구들과 딱지치기나 잡기놀이를 하는 꽃차남은 제 형을 봐도 데면데면. 이 '의좋은 형제'는 놀이터에서 집까지 오는 3분을 활용해서 꼭 싸움을 한다. 제 형보다 한 발짝 먼저 집에 들어오는 꽃차남은 유치원 가방을 팽개치며 말한다.
"강제굴, 꿀돼지! 형형이 한 건 다 맛없어!" 제굴은 하해와 같은 마음을 갖고 싶으나 아직도 질풍노도에 휩싸이는 열일곱 살 청소년. 열 살이나 많은 형님한테 무례하게 구는 동생의 행동을 봐줄 수는 없다. 꽃차남과 똑같이 무례하게 맞선다. 어느 때는 말로, 어느 때는 동생의 몸을 '터치'하는 행동으로. 꽃차남이 분하다고 우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서 제굴은 부엌에서 음식을 한다.
어느 날 오후, 제굴은 엄마가 먹다 만 가래떡을 보고서는 냉장고를 뒤졌다. 쇠고기 등심까지 있으니까 흥이 났다. 등심을 다져서 양파, 간장, 후추, 다진 마늘을 넣었다. 떡도 조그맣게 잘라서 넣었다. 그걸 동그랗게 빚어서 프라이팬에 지졌다. 향기로운 떡갈비 냄새를 맡고 꽃차남이 부엌으로 왔다. 형제는 먼저 맛을 보고는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 사 먹는 떡갈비 맛이 나요. 잘 된 것 같아. 먹어 봐요.""(고기를 안 좋아하는 나는 병아리 눈물만큼만 먹으면서) 좋아. 근데 너는 꽃차남 입맛 찾아준다면서 너 먹고 싶은 것만 하는 것 같다.""아니에요. 꽃차남도 잘 먹어요. 근데 다음에는 고기를 안 갈아야겠어요. 씹는 맛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