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돌아와 저녁답 동네 공터에서 노는 아이들
송성영
마지막 수업이 있었던 날이었다. 몇몇 말썽꾸러기 녀석들이 내게 편지를 썼는데, '말 안 듣고 떠들고 쌤 무시하고 돌아다닌 것을 혼내지 않아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괴발개발로 글쓰기 했던 평소와는 달리 녀석들은 아주 반듯한 글씨로 또박또박 편지를 썼다. 녀석들은 알고 있었다. 다른 수업과 달리 글쓰기 수업을 함부로 했다는 것을. 녀석들은 입버릇처럼 수업 시간 내내 글쓰기 싫다고 했지만 이미 그 자유로운 시간을 누리며 자유로운 글쓰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른들이 억압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자성할 줄 알고 스스로를 일으킬 힘이 있다는 것을 내게 일깨워 주었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나서 나는 녀석들에게 '고맙다. 고맙다. 화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 말만 되풀이 할 수밖에 없었다.
북인도 올드 코사니의 작은 학교를 나서면서 저 가난한 아이들에게 희망은 무엇일까. 떠올리다가 그만둔다. 인류 역사가 부르짖고 있는 '부질 없는 희망' 따위는 접어 두기로 했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삶의 방식으로 '아이들은 미래의 희망'이라는 그럴듯한 표어를 내걸고 아이들을 억압하곤 한다.
부조리한 세상을 누리고 사는 어른들이 말하는 희망은 아이들의 희망이 아니라 자신들이 정해놓은 희망일 뿐이다. 아이들에게는 본래 희망이나 절망이라는 단어조차 없다. 희망과 절망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나는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삶의 답을 찾지 못할 때,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의 자유로운 영혼을 껴안고 그 답을 찾곤 한다. 아이들의 자유로운 영혼은 내 오래된 영혼이다. 잃어버린 나의 자유로운 영혼이다.
숙소로 돌아와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나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린다. 천둥번개까지 치고 우박이 떨어진다. 한 여름 날씨가 갑자기 써늘한 가을 날씨가 되었다. 한두 시간 퍼부어대던 비가 그쳤다. 맑은 가을 하늘이다.
늦은 오후 간디 아쉬람에 머물고 있는 가텀씨와 함께 코사니 상가에서 얼쩡거리다가 빵 한 줄과 토마토 1킬로그램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잠자리만 한 하루살이 떼들이 바글바글하게 날아다닌다. 저 하루살이 떼의 날갯짓으로 또 다른 하루가 죽음처럼 사라져 가고 있다.
숙소 앞 공터에서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신나게 놀고 있다. 여자 아이들과 남자 아이들이 따로 따로 놀고 있는 것 같은데 가만 보니 함께 놀이를 하고 있다. 아이들과 뛰어 놀고 싶지만 어떤 놀이인지 알 수가 없어 주변을 서성거리며 사진만 부지런히 찍어댔다. 아이들이 놀이에 지쳐 갈 무렵 숙소로 돌아오는데 늘 그래왔듯이 앞 집 아이가 나를 보더니 그 자그마한 고사리 손으로 합장을 하며 내게 말한다.
"바바지!""노,노, 엉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