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4월 미주리 사우스웨스턴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동료 및 교수들과 함께 찍은 사진. 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한도원 박사이고, 같은줄 맨 왼쪽 안경쓴 여성이 애나 블레어 박사.
한도원
다행스럽게도 당시 그 지역에는 이미 사립대학 등에 다니는 한국 유학생 5~6명이 있어서, 주말이면 종종 공원에서 고기를 구워 먹거나 이런 저런 학업 관련 얘기들을 나누며 서로 외로움을 달랬다. 그들 대부분은 부잣집 자제들이었으나, 규율이 엄격한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야 했으므로 주로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자주 모이곤 했다. 그들 가운데는 지금도 서로 연락하며 지내는 친구도 있고, 이미 저세상으로 가버린 친구도 있다.
정신없이 한 한기를 지내고 여름방학을 앞두게 되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사우스 웨스턴 미주리 주립대학은 쿼터제 수업을 하고 있어서, 많은 학생들이 겨울, 봄, 가을 학기를 듣고 여름엔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위해 학교를 떠났다. 나 또한 수업을 듣는 짬짬이 여름방학 동안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다.
마침 유엔한국재건단(UNKRA) 우편물 취급소에서 일하던 당시 한 미국인 엔지니어가 유학을 준비중이던 내게 알려준 일자리가 생각나 아르바이트 신청서를 보냈다. 미시간 주 그랜드 래피즈(Grand Rapids)의 북쪽 지역에 있는 미니왕카(Miniwanca)라는 캠프였다. 봄학기가 끝날 무렵 그곳으로부터 일할 자리가 많다며 초청장이 날아 왔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것은 하루 일당이 1달러 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비록 숙식을 제공해 준다는 조건이었지만, 당시 임금 수준으로도 형편없이 낮은 금액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일당 1달러를 받고 미시간의 캠프에 가서 일할 생각을 밝히자 평소 친절하게 대해주던 교수 한 분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만류했다. 그는 "1년 생활비가 400달러 정도인데, 그곳에서 일해서 어떻게 그 돈을 모으겠느냐"고 했다. 특히 한국 유학생 친구들이 내 얘기를 듣더니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뉴욕이나 시카고 등지에서 일을 하면 하루 20달러를 너끈히 벌 수 있는데, '일당 1달러'는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딴은 그랬다. 하루 10달러나 15달러가 아니고, 정상적으로 벌 수 있는 금액의 20분의 1에 불과한 1달러라니!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달랐다. 나는 이제 막 미국에 온 초짜 유학생으로, 미국 문화를 배우는 일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 액수에만 매달려 바쁘게 일을 쫓으며 한여름을 보내다 보면 뭔가를 생각하고 배울 여지가 없을 것만 같았다. 모자라는 생활비는 지금처럼 일을 하면서 보충하면 될 것이고, 느긋하게 미국사람들을 상대하고 미국문화를 배우는 기회를 삼는 것이 먼 장래를 위해 좋을 것만 같았다.
한편으로는, 당초 빈털털이 신세로 살아온 마당에 낙원 같은 이 땅에서 다음 학기 생활비 걱정을 한다는 것이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 탈출 이후 온갖 고생을 다 해온 나는 그만큼 용감해져 있었다.
교수와 친구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내린 미시간 캠프 미니왕카의 아르바이트 일은, 내 평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 가운데 하나였음이 그 여름, 그리고 이어지는 여름에도 입증되었다. 겨우 한여름 아르바이트 일자리 결정에 무슨 큰 의미를 담아서 말할 수 있겠는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미시간 미니왕카 캠프에서 겪은 일들로 인해 내 인생의 주요 행로가 정해진 사연들을 듣게 된다면 누구든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상술하게 될 것이다.
학기를 마치고 서둘러 당도한 캠프 미니왕카에는 디렉터 하나에 일꾼이라고는 내가 전부였다. 캠프 미니왕카는 주로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이 사용하는 기독교 수양관이었는데, 막 건축이 끝난 50개의 캐빈이 여기저기 정연하게 위치해 있었다. 그런데, 건축만 덩그러니 끝냈을 뿐 안팎으로 다듬고 손을 대야 할 곳이 많았다. 주변에 조경시설도 안 되어 있어서 그 또한 두 사람이 해야 할 몫이었다. 완전한 캠프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서는 할 일이 태산이어서 막막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미시간호가 바로 곁에 있었고 캠프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 환경이 고즈넉하고 아름다워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기도 했다.
미니왕카에서 만난 '스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