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엔칸츠 벼룩시장의 한 상점.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인이 손님에서 권총을 팔기 위해 작동법을 알려주고 있다.
박성경
그래서 바르셀로나 '엔칸츠 벼룩시장(Mercat del Encants)'에 거는 기대도 컸습니다. 엔칸츠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오래된 벼룩시장이고, 원래 에스파냐 광장 근처에 있었는데 1929년 만국박람회 개최로 인해 1928년에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현재의 위치로 쫓겨나다시피 옮겨졌다는 이력이 은근 매력적이었죠.
하지만 엔칸츠 벼룩시장에 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유럽 벼룩시장에 한국 아줌마의 로망은 산산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여긴 일단 좀 험악한 분위기였어요. 헌 옷 수거함에서 가져온 듯한 꾀죄죄한 옷을 파는 좌판이 대부분이었고,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노점에선 무섭게도 총을 팔고 있었어요. 그것도 모르고 사진을 찍다가 험상궂게 생긴 주인아저씨에게 경고를 받았고 다른 노점 할머니에겐 알아듣지도 못하는 스페인 욕을 엄청나게 얻어먹었지요.
뭔가 로맨스가 생길 것 같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원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래된 그릇과 소품들이 즐비하고, 어디선가는 턴테이블이 돌아가며 옛 노래가 흘러나오고, 상인과 손님들의 흥정 소리도 경쾌한…. 유럽의 벼룩시장에서 제가 바란 건 그런 모습이었거든요.
기대는 처참히 무너지고 괜찮은 물건 하나 건지지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 부부는 씩씩하게 엔칸츠 벼룩시장을 두루 둘러보고 떠났습니다. 아침 일찍 첫 일정으로 잡아 바르셀로나 외곽까지 먼 길을 갔기에 좀 아쉽고 서운하긴 했지만, 후회는 없었어요.
'안 가보고 기대만 하는 것보다, 가보고 실망하는 게 낫다.'이것이 우리 부부의 여행 신조니까요. 그리고 여행이란 게, 때에 따라 또 사람에 따라 너무나 다르게 경험되고 느껴지는 것이니까요.
얼마 전 이 엔칸츠 벼룩시장은 큰 규모로 개보수를 해서 아주 깔끔해졌다고 하고, 최근 이곳을 다녀온 여행자들에 의하면 구석구석 괜찮은 보물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답니다. 그러니까 조금 여유로운 일정으로 바르셀로나에 들르신다면 이 벼룩시장도 저와 다른 느낌으로 즐겨보셨으면 좋겠어요.
사람을 치유하는 예술 작품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