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사정 대표, 최경환 경제부총리, 상임위원 등이 참석한 노사정위원회 제 89차 본위원회가 열렸다.
이희훈
한국 경제사회의 새로운 도약과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만들었다는 노사정 합의문은 ▲노사정 협력을 통한 청년고용의 활성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사회안전망 확충 ▲불확실성의 제거 ▲노사정 파트너십 구축 ▲합의사항 이행 및 확산이라는 6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합의문은 '대타협'이라는 부제가 무색해질 정도로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있다. 노동시장을 개혁한다면서 기업에게는 자율과 인센티브를, 노동자에겐 강제와 패널티만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들여다보자. 합의문은 대타협의 가장 큰 목표였던 청년고용 확대를 위해 청년고용을 확대하는 기업에게 '세대 간 상생고용지원,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 세무조사 면제 우대, 중소기업 장기근속 지원, 공공조달계약 가점 부여' 등 다양한 정책 지원을 약속하는 동시에 지나치게 높은 연봉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고소득 임·직원'에게 "자율적"으로 임금 "인상" 자제를 '부탁'하고 있다. 반면, 노동자들에게는 임금피크제를 적용해 삭감된 임금을 청년고용에 활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화룡점정은 따로 있다. 합의문에 따르면 경영상 사유로 고용조정이 필요한 경우에 경영계는 감원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노동계는 이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합의문에는 모호하게 표현됐지만, 회사가 근무 성과가 나쁘거나 근무태도가 불량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근로기준법에도 없는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완화 조치다.
합의문의 내용이 이런 식이니 왜 한국노총이 산하 노조 위원장의 분신 시도에도 이 합의안을 밀어붙였는지에 대해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일부 언론에서는 고용노동부가 한국노총에 배정된 국고보조금을 늑장 집행하거나 한국노총 산하 노조위원장의 횡령 및 배임혐의를 빌미로 노사정 합의를 압박한 의혹이 짙다는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사실이 무엇이든, 무덤 속의 전태일이 한탄할 일이다.
쉬운 해고? 진짜 문제는 항시적 해고 가능성의 정치적 효과
한국노총의 합의에 무슨 배경이 있는지는 몰라도, 일반해고가 불러올 파장은 만만치 않다. 당장 민주노총과 야당은 이 조항이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더 낮은 임금과 성과 강요, 해고를 안겨줄 '재앙'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완화는 곧 쉬운 해고라는 진단이다.
이런 우려를 인식한 듯 지난 14일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쉬운 해고를 하는 게 아니라 공정한 해고를 하는 것"이라고 반박한 데 이어,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 역시 "결코 희생을 강요하고 쉬운 해고를 강제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언급이 반복되는 것 자체가 이번 합의의 핵심이 '해고'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즉, 쉽든 어렵든, 공정하든 불공정하든 청년고용확대를 기존 노동자의 해고를 통해 만들어 내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해고 자체보다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완화가 가져올 노동시장 내부의 '정치적 효과'다. 현재의 근로기준법상 해고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는 해고 대상이 된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문제해결을 모색할 수 있다. 그러나 '성과'나 '근무태도 불량' 등 개인적 사유로 진행되는 해고는 그것이 어떤 방식이건 노동자들을 개별화·파편화로 이끈다. 해고가 구조적인 원인 때문에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개인의 문제' 때문에 기인하는 것으로 여겨질 때, 이를 막을 방법과 책임 역시 개인에게 넘겨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