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토론회 때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
사진공동취재단
"그러니까 제가 대통령 하겠다는 거 아니겠어요?"지난 대선 토론, 증세를 하지 않고 어떻게 복지 재원을 충당할 수 있느냐는 문재인 후보의 물음에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이렇게 답했다. '어떻게?'를 물었는데. '누가?=내가!'로 대답한 박근혜 후보. 그는 대선 토론 기간 동안 몇 번이나 '어떻게'라는 질문에 '내가'로 응수했다.
박근혜 후보의 답변에는 소통이 없었다. '누구'와 '어떻게'에 대한 설명보다는,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해야 한다'는 당위가 먼저였다. 이명박 정부와 공동의 축이었던 과거는 당명의 변경으로 세탁됐고, 이명박 정부 실정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이유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소통은 생략되고 당위만 강조된 박근혜 정부의 국정 운영은 온갖 불협화음을 불러왔다. 노인 복지 예산은 줄어들었고, 보육 예산은 지방정부에게 짐짝처럼 떠밀려졌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법인세 환원은 절대 불가하다면서, 담뱃값을 올려 서민의 주머니를 털었다. 정책이 쏟아질 때마다 명분만 요란할 뿐 합리적인 설명이나 토론은 없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때 아닌 모금 운동 박근혜 대통령의 아이디어로 만들었다는 '청년희망펀드(가칭)'도 소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이디어 차원에서 내놓을 정책을 어떤 토론이나 검증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밀어붙인 모습은 놀랍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펀드 조성을 지시한 다음날 16일, 대통령은 2천만 원을 기부하고 매달 월급의 20%를 내놓기로 했다. 이에 정부 고위 관계자는 물론 여당의 대표와 최고위원들까지 가세하고 나섰다.
정부는 청년희망펀드를 기업은 물론 민간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통령의 아이디어로 시작해서 일사천리로 진행된 희망 펀드는 아직 어떻게 운용할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다. 청년창업 소액대출·청년 구직자 지원·청년 채용기업 지원·창조경제혁신센터 연계 지원 정도가 펀드의 활용 방안의 전부다. 이를 운용할 청년희망재단 설립도 연말이 되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한 마디로 돈부터 거둬 놓고 보자는 발상이다. 청년 실업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정부에 대한 비판 또한 어느 때보다 높다. 청년희망펀드 추진은 '청년 실업 문제를 어떡할 건가요' 묻는 여론에, "그래서 돈 모으고 있잖아요"라는 대통령 특유의 빗나간 답변과 다를 바 없다. 소통과 이해를 돕는 설명은 이번에도 생략됐다. 대신 대통령이 팔을 걷어붙였으니 모두 동참해야 된다는 무언의 압박만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하는 일이니까 모두 동참하기에는 문제가 많다. 청년 실업 문제는 내수 경기의 침체. 저임금의 고착과 기업의 이윤 극대화를 위한 노동력 절감 등의 요인이 오랫동안 축척되어 나타난 결과다. 임금 피크제를 도입하고 손쉬운 해고를 조장하면서, 펀드를 조성해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또, 자영업자 폐업이 속출하는 현실에는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 정부가, 펀드로 청년 창업자에게 소액 대출을 알선하겠다는 건 빚더미 대열을 줄을 세우는 것과 다름없다.
국내 기업의 사내유보금만 700조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전경련의 발표에 따르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 중 35.8%는 채용을 줄일 계획이며, 신규 채용을 늘리겠다는 응답은 19.6%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비정규직을 늘리고, 노동 강도를 높여서 이윤을 만들어 창고에 현금을 차곡차곡 쌓아두는 대기업들. 이런 관행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청년 실업 대책은 정부 노력에 상관없이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