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씨 어머니가 하는 음식점은 테이블 회전을 하지 않는다. 그 한 끼니에 온 정성을 쏟는다. 손님들이 돌아가면, 주방 청소를 하고 유기그릇을 닦는 데 기본 3시간이 걸린다. 온갖 정성을 쏟아야 한다. 그래서 수정씨는 음식을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매거진군산 이진우
시간이 지날수록 음식은 수정의 마음에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나 수정은 "너무 힘들어. 완전 싫어"하면서 저항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가 하는 음식점은 테이블 회전을 하지 않고, 한 끼니에 온 정성을 쏟는다. 음식을 만드는 일은 중노동에 가까웠다. 손님들 대접하는 데 2~3시간. 손님들이 돌아가면, 주방 청소를 하고 유기그릇을 닦는 데 기본 3시간이 걸린다.
"대학 졸업하고 나서 늘 고민을 했어요. 뭐 하고 살까 그런 거요. 그런데 어느 날 음식을 했는데 너무 고급스럽게 나온 거예요. 전에는 미적 감각이 타고난 사람만 음식을 해야 한다고 여겼는데 플레이팅(장식)이 잘 됐어요. 저도 해보니까 되더라고요. 그 뒤로 차츰차츰 생각이 바뀌었어요. 어느새 '나도 음식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수정씨는 궁중음식연구원에 계속 다녔다. 우리나라 호텔 한정식의 일인자인 최난화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서 실습을 했다. 궁중음식연구원의 병가원에서 떡, 한과, 차를 배웠다. 한 번 들은 강의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또 찾아서 들었다. 음식 하는 재미를 알게 되니까 똑같은 강의를 들어도 새로웠다. '배우는 기쁨'이라는 말을 몸으로 느꼈다.
학교 졸업하고도 수정씨는 여전히 배우는 사람이었다. 해외로 나가서 공부하고도 싶었다. 큰돈 들이는 일이라 무턱대고 갈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꼼꼼하게 알아보고 미국의 'CIA 요리학교'에 갔다. 막상 가보고 나서는 '한국 음식도 다 모르는데 이국 음식을 접목해서 얼마나 새롭게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했다. 그러던 중 하루는 10대 때 미국 요리학교에 온 한국 학생이 수정씨에게 말했다.
"나는 된장, 고추장, 간장 같은 한국 음식을 너무 혐오해요. 숙성시킨다고 그렇게 오랫동안 놔두는 건 비위생적이에요."동의할 수 없었다. 그때 수정씨는 '한국 음식을 더 잘 알아야 해. 나는 아직 서양음식 공부할 단계가 아니야' 라고 생각했다. 전통요리를 고수해온 일본으로 가 봤다. 도제식 교육에는 기술뿐만 아니라 장인정신까지 스미어 있었다. 초밥 가게, 전통 소고기 가게, 술 담그는 가게는 모두 초라했다. 또 주방장들은 연로했다. 그러나 아우라가 있었다. 제자들은 속으로도 '스승한테 빨리 배워서 빼가야지'라고 하지 않는단다.
감동받은 수정씨는 일본 최초로 조리사 교육을 실시했던 '나카무라 조리제과전문학교'에 탐방을 갔다. 자기 문화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태도가 마음에 와 닿았다. 수정씨는 같이 간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서 나카무라 조리제과전문학교의 학교장에게 질문했다.
"음식을 배우는 학생이 가져야 할 덕목은 무엇입니까? 음식 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손님에게 전달될 수 있습니까?""매우 감사합니다.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한평생 음식을 만들었던 장인은 자신의 삶과 어릴 때 만난 스승을 얘기했다. 돈을 받고 음식을 파는 사람과 돈을 주고 음식을 먹는 사람 사이에도 마음이 깃들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좋은 음식 재료에 정성이 더해지면 손님도 알아봐 준다고. 수정씨 마음은 맑아졌다. 그렇게 음식을 대하는 사람은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 유현자씨.
"이건 너무 좋은 직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