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떠받치고 있는 성 프란체스코의 꿈을 꾸는 교황 지오토, '교회를 떠받치고 있는 성 프란체스코의 꿈을 꾸는 교황', 아시시 산 프란체스코 성당. 수도회 승인을 미루던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쓰러져가는 교회를 떠받치는 성 프란체스코의 꿈을 꾸고 난 후 수도회를 승인하게 됩니다.
박용은
가톨릭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성인그로부터 8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2013년, 소박하고 평범한 생활과 정의로운 행동으로 존경받던 아르헨티나의 추기경,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는 "그때 나에게 '가난한 사람'이란 말이 참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면서 바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떠올렸죠. 나에게 있어 그는 가난과 평화,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대변인이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교황의 호칭을 '프란치스코'로 정하게 됩니다. 가톨릭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성인,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가진 최초의 교황이 탄생한 것이지요.
스승인 치마부에의 손에 이끌려 성당 벽화 작업에 참여하게 된 지오토의 프레스코 연작은 이런 성 프란치스코의 일생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실제 인물과 건물들, 그 시대의 옷차림과 풍습까지. 지오토의 작업은 중세 이후 당대인들의 모습을 재현한 거의 최초의 그림입니다. 물론 리얼리즘이 워낙 익숙한 오늘의 현실에서 보면 그다지 훌륭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지만, 10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비잔틴과 고딕이라는 엄숙한 중세 양식에 익숙해 있던 당대 사람들의 눈에는 혁명적일 만큼 사실적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지오토는 이 <성 프란치스코의 일생> 작업 이후 이탈리아 전체에 이름을 떨치게 됩니다. 그리고 시대나 양식으로 분류되던 미술사가 지오토 이후로는 화가와 작품을 중심으로 서술되게 되죠. 서양 회화사의 기준이 지오토가 되는 순간이 바로 이 <성 프란치스코의 일생> 프레스코 연작인 셈입니다.
교황 인노첸시오 3세가 꿈을 꾼 후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승인하는 장면과 함께 성 프란치스코가 새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은 원래도 유명하지만 나에게도 깊은 감명을 줍니다. 몇몇 수사와 함께 길을 걷던 성 프란치스코는 우연히 도로 양 옆에 있는 나무 위에 수많은 새가 가득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는 동료 수사들에게 "제가 저의 자매들인 새들에게 설교하러 가는 동안 잠시 기다리십시오"라고 말하고는 새들에게 가서 설교를 했죠. 그러자 새들이 성 프란치스코 주위로 날아와서는 설교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마리도 날아가지 않고 조용히 듣고 있었다고 합니다.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성 프란치스코의 사랑과 평화의 정신이 가난한 이들과 인류를 넘어서 다른 자연 대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일화이지요. 그래서, 1979년 20세기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 프란치스코를 생태계와 자연의 수호성인으로 지정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