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교수가 투신한 자리에는 추모의 의미가 담긴 꽃과 촛불들이 놓여져 있다.
부산대 총학생회 페이스북 갈무리
"쿵"
지난 17일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각. 부산대 본관 1층 현관 앞에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자리에는 교수 한 명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었다. 구급차가 긴급출동했다. 그러나 그의 심장은 이미 뛰지 않았다.
고인은 국어국문학과 고현철 교수(54). 그가 총장 직선제 폐지에 반발하며 본관 4층 국기게양대에서 몸을 던진 배경은 이렇다.
비극은 2011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MB정권 당시 교육부는 '국립대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며, '총장 직선제 폐지' 카드를 들고 나왔다. 총장 직선제는 평교수들의 손으로 총장을 뽑는 직접·비밀·평등 선거제도다. 폐지 명분은 직선제가 교수들의 정치화를 불러 교육·연구 분위기를 해친다는 주장이었다. 교수들은 반발했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직선제는 과거 민주화 시기, 대학이 정권으로부터 독립해 자율성을 얻게 된 상징처럼 여겨온 자부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교육부는 재정지원 사업 등의 평가지표에 직선제 폐지를 반영시켜버렸다. 그리고 평가 하위 15% 대학은 '구조개혁 중점추진 국립대'로 지정해, 학과 통폐합 등을 유도하려고 했다. 결국 9월 5곳(강원대·부산교대·충북대 등) 지방대가 하위대로 지정됐다. 주된 이유는 황당하게도 '직선제를 폐지하지 않아서'였다. 평가 배점이 100점 중 5점이었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재정을 지원받는 국공립대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국립대 대부분은 2012년 4월 교육부의 '대학교육역량강화사업' 평가를 앞두고 직선제를 폐지했다. 여전히 다수의 대학 교수들이 거세게 교육부와 대학본부의 압력에 버텼지만, 국립대 32곳 중 6곳(부산대·경북대·전남대·전북대·목포대·한국방송통신대)만이 직선제로 남았다. 그리고 이들마저 다시 9월 '구조개혁 중점추진 국립대 지정'을 앞두고 모두 직선제를 폐지했다. 그러자 교육부는 9월 하위 대학 지정을 하지 않았다. 결국 '국립대 선진화 방안'의 목적이 직선제 폐지에 있었다는 걸 드러낸 셈이다.
박근혜 정권이 역시 직선제 폐지 압력을 유지했다. 교육부는 2013년 10월 전국 국립대에 보낸 공문에서 총장 선출에 관한 학칙 등의 제·개정 완료 여부 등을 반영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각종 재정사업 지원에 변함없이 직선제 폐지가 평가지표로 반영됐다. 그리고 교육부 입맛대로 총장을 간선제로 뽑기 시작한 대학들 사이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교육부의 총장 임명제청 거부 갑질경북대, 공주대, 방통대 등은 간선제로 총장 후보를 선출해 교육부에 임용제청을 올렸다. 그런데 교육부는 정확한 사유도 밝히지 않고 제청을 거부해 버렸다. 거부당한 후보자들 일부는 교육부와 소송이 진행 중이다.
한국방송통신대 농학과 류수노 교수는 그중 한 명이다. 검정고시 출신에 방송대 학사학위를 받고, 이후 총장 후보까지 된 그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기대는 곧 산산조각났다. 교육부가 사유도 밝히지 않은 제청거부 공문 몇 줄을 딸랑 보냈기 때문이다.
류 교수는 답답했다. 여러 번 사유를 알려달라 요청했지만 묵살됐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짚이는 건, MB때 딱 한 번 민주주의 퇴보를 우려해 시국선언에 참여한 것밖에 없었다. 그는 교육부와 소송에 뛰어들었다.
그는 지난 1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교육부로부터 미운털이 박히는 게 두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고 떳떳하다.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대학의 자율권을 위해 싸워 이름을 남기는 게 낫지 않느냐"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