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곡선이 유독 아름다운 용눈이 오름. 용이 누워 있는 모습 같기도 하다.
황보름
용눈이 오름을 사랑했던 작가, 김영갑 두 번째로 도착한 곳은 용눈이 오름이었다. 마치 용이 누워있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용눈이라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사장님은 오름을 오르며 혹시 김영갑 사진작가를 아느냐고 물었다. 우리 둘은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김영갑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김영갑 작가는 제주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제주에서 죽었다고 했다. 궁핍한 살림살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주 방방곡곡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제주도민도 모르던 제주의 풍경을 알린 작가였단다. 그 김영갑 작가가 유독 좋아한 오름이 바로 이 용눈이 오름이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용눈이 오름을 오르고 또 올랐단다. 그럴 때마다 매번 또다시 오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제주에서 돌아온 뒤 나는 김영갑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의 책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읽었다. 작가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선이 부드럽고 볼륨이 풍만한 오름들은 늘 나를 유혹한다. 유혹에 빠진 나는 이곳을 떠날 수 없다. 달 밝은 밤에도, 폭설이 내려도, 초원으로 오름으로 내달린다. 그럴 때면 나는 오르가슴을 느낀다. 행복감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중에서작가는 오르가슴이라는 격렬한 찬사를 오름에 보냈다. 오름의 푸른 아름다움은 작가에게 환희 그 이상으로 다가간 듯했다. 작가는 오름에서 우리가 보지 못한 그 무엇을 보았던 것이 분명했다. 그건 어쩌면 생의 이유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오름이 보여주는 생의 이유는 작가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작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절정의 기쁨을 느낄 때마다 나는 다짐한다. 죽는 날까지 자연을 떠돌아다니리라. 홀로 초원에 묻혀 살아가리라. 끼닛거리가 없으면 없는 대로, 외로우면 외로운 대로 살아가리라. 모두를 망각하고 초원으로 바다로 흘러가리라.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중에서완만한 경사의 오름을 15분 정도 오르니 어느새 정상에 섰다. 그러자 거센 바람이 사정없이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다. 제주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오름에 오른 것을 환영한다고. 환영 인사에 맞춰 우리도 서로에게 우리의 기분을 털어놓는다. '너무 좋다!', '바람이 너무 세!', '여기 진짜 환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바람이 그만큼 셌다. 다만 우리는 서로의 표정을 보며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을 상대방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계속 오름과 바람을 느끼고 있는데 사장님이 귓가로 다가와 소리소리를 지른다. 대충,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제주어가 뒤끝이 짧은 이유를 이제 알겠느냐는 말일 테지. 바람이 너무 세서 말을 길게 할 수가 없어 짧아졌다는 것일 테지. 그래서 '밥 먹었습니까?'가 '밥 먹었수꽈?'가 되었다는 것일 테지. 하지만 난 이날 오름 위에서만큼은 이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바람의 세기 때문에 제주어가 짧아진 거라면 제주어는 아예 사라졌어야 할 것 같았다. 난 이날 '밥' 소리조차도 들을 수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