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청와대
6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생중계가 막바지로 치닫던 그 시각, 스마트폰이 격렬하게 사이렌 소리를 울려댔다. 메르스 사태 초기 '낙타 주의'라는 애먼 대책을 내놨던, 국민안전처가 하필 대통령의 담화 발표 중간에 긴급재난 문자를 보낸 것이다. 내용? 설마 특이할 게 있었겠는가.
국민안전처가 '우리 일 열심히 하고 있어요'라고 홍보라도 할 요량이었는지, 아니면 청와대와의 긴밀한 공조(?)나 지시를 받았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 타이밍은 정말 기막히게 절묘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소설가 이외수 역시 그 시각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적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자마자 핸드폰에서 재난 경보가 두 번이나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대국민담화를 재난으로 간주하는 것 같아서 잠시 당혹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물론 국민안전처가 그런 반정부적인 일을 할 리가 없겠지만 쿨럭, 참 타이밍 한번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8.6일 현재 폭염특보 발령중! 농사일 및 야외활동 자제, 충분한 물마시기, 주변 노약자 돌보기 등 안전사고 유의'라고 국민안전처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국민이 어떻게 하라는 말만 적혀 있고 정부가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빠져 있네요. 정부는 재난문자 보내는 것으로 땡입니까."타이밍은 절묘했지만, 내용도 형식도 엉망국민이 폭염 속에 허덕이고 심지어 사망자까지 나오는 판국에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려대는 국민안전처도 문제지만, 스트레스 지수를 더 높이는 건 그 재난 문자와 경쟁을 하던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의 내용과 형식이었다.
기자와의 문답을 뺀 것은,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재앙과도 같은 상황을 마주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덜어 주려는 청와대의 배려라 헤아릴 수 있다. 십수 장에 가까운 내용을 박 대통령이 프롬프터로 읽어 내려간 것도 담화 내용을 국민에게 숙지시키려는 노파심의 발로라고 이해해 줄 수 있다.
그간 '유체이탈화법'이니 '박근혜 번역기'니 해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대통령을 국민이 얼마나 안타까워했던가. 기자와의 문답을 빼고, 프롬프터 내용만 열심히 읽은 것은 아마도 폭염 속에 불쾌지수가 높을 수밖에 없는 국민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덜어 보자는 대통령의 넓디넓은 아량의 발로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참을 수 없는 담화의 가벼움에 관해 몇 가지 꼽아보고자 한다. 휴가를 다녀와서 국정 하반기 철학을 국민에게 보고(라고 쓰고 하달이라 읽는)하고 각인시키기 위해 '붉은색' 옷을 입고 나온 대통령의 진심에 재를 뿌릴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일방적인 담화가 주는 폐해는 지적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이 첫 번째 담화 발표도 아니고 말이다.
메르스 사태와 박근령 망언, 사과는 왜 안 하나 첫째, 도대체 박근혜 대통령이 존경하는 국민은 누구인가. 담화문을 읽으며 박 대통령은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을 그렇게도 호명해댔다. 그것도 무려 7번씩이나. 드라마 <어셈블리>의 주인공인 국회의원 진상필 의원은 말했다. "존경의 뜻은 알고나 쓰는 거냐"고. "높을 존에 공경 공을 쓰는 글자"라고.
"이런 노력은 정부와 대통령의 의지만으로는 해낼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국정의 중심은 국민이고 혁신과 개혁의 동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국민여러분이 함께 손잡고 동참해 주실 때만이 나라와 가족과 개인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담화 말미, 박근혜 대통령이 읽어 내려간 내용이다. 좋은 개념어와 추상어들은 다 들어가 있다. 그러나 그 '존경'한다는 국민이 대통령의 철학에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무엇보다, 뒤늦은 국가안전처의 재난 문자를 발송을 반면교사 삼아 메르스 사태에 대한 책임과 사과, 재발 방지의 표명이 우선돼야 했다.
아니, 어디 메르스 사태뿐인가. 국정원 해킹 사태를 비롯해 유승민 정국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난항 등 메르스 사태 이후 난맥을 보인 국정 상황에 일언반구도 없다는 것은 국민을 존경은커녕 철저하게 무시하고 또 무시하는 태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간 국민은 대선공약을 시작으로 대통령의 거짓말을 신물 나게 겪어야 했다. 말을 줄이고 자신이 할 말만 한다고 전부가 아니다. 존경을 운운하려면 그간의 의혹이나 난맥상에 대해 최소한의 사과라도 했어야 한다. 그 누구도 존경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노동개혁이 정말 '일자리'라고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