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 영정.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송시열과의 회동에서, 효종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북벌론을 입에 담았다. 평소에도 북벌론을 언급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기록상으로는 이때가 최초이자 최후였다. 그는 중앙군을 확충하려 하는 것은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청나라에 대한 복수를 위한 북벌전쟁을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10년만 두고 보면 내 뜻을 알게 될 거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자 송시열은 "그러셨습니까?"라는 식으로 응대하면서 중앙군 확충에 반대했다.
대화가 평행선을 달리고 감정 섞인 말들이 오고간 끝에 효종이 내뱉은 한마디.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해야 할 일 중에서 무엇이 가장 급선무인지 말해주시오." 나더러 뭘 하라는 말이냐고 물은 것이다. 그러자 송시열은 사서삼경 중 하나인 <대학>에 나오는 '격물치지·성의정심'이 시급하다고 답했다.
<대학>에 대한 송나라 주자의 해설에 따르면 격물(格物)은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것, 치지(致知)는 무궁한 단계까지 지식을 확장하는 것, 성의(誠意)는 마음을 성실히 하는 것, 정심(正心)은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중앙군 증강에 신경 쓰지 말고 이런 마음공부에나 신경 쓰라는 게 송시열의 뜻이었다.
'격물치지·성의정심'은 <대학>에서 강조한 인격수양 단계 중에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전 단계다. 격물치지를 한 다음에 성의정심을 하고 성의정심을 한 다음에 수신제가를 하고 그런 다음에 치국평천하를 해야 한다고 <대학>에서는 강조한다.
효종은 치국평천하를 하는 사람이었다. 인격적으로도 그런 단계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객관적·직업적으로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여당 대표인 송시열은 그런 효종에게, 치국평천하의 이전 단계인 수신제가도 아니고 수신제가의 이전 단계인 격물치지·성의정심에나 신경을 쓰라고 말했다. 임금에게 해서는 안 될 모욕적인 언사였던 것이다. 이것은 송시열이 과거에 효종의 스승이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송시열은 효종이 중앙군 확충을 추진하는 동기가 북벌이 아니라 왕권 강화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공부나 하시라고 핀잔을 준 것이다. 송시열의 말 가운데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조용히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는 식의 과격한 표현도 있었다.
송시열의 인식에 따르면, 효종은 '치국평천하'는커녕 수신제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수신제가의 이전 단계인 마음공부에나 신경을 써야 할 사람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송시열의 개인적인 판단이었다. 이런 모욕적 언사를 듣고 회동을 끝낸 지 2개월이 좀 지난 효종 10년 5월 4일(1659년 6월 23일), 효종은 마흔한 살 나이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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