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바꿔치기' 의혹이 일었던 국정원 직원의 빨간색 마티즈 차량이 폐차됐다. 경기지방경찰청은 이런 의혹에 대해 "전혀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사진은 경기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가 지난 22일 같은 장소에서 재연 실험을 벌인 영상 중 한 장면이다.
경기지방경찰청
휴민트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듯한 이철우 의원이 발언에 이질감을 느끼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번 사건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국정원 직원 임 과장 때문이다.
비록 혹자들은 임 과장 자살과 관련해 그가 죽기 전 타고 있었던 마티즈가 이상하다느니, 그에 대한 실종 신고 자체가 이상하다느니 하며 음모론을 제기한다. 그 모든 걸 차치하고 중요한 점은 '국정원 직원이 자살을 택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했을까?
그가 유서에서 밝힌 이유는 간명하다. 그가 모든 책임을 지고 있었고, 그가 속한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란다. 기다렸다는 듯 국정원이 임 과장의 책임을 한껏 내세우며 그의 유서가 틀리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도 일반 국민 입장에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국정원 내 한 개인이 이 엄청난 프로젝트 전체를 책임진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매우 정치적이고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을 한낱 과장급 인사가 그 위에 결제도 맡지 않고 그냥 벌였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한 국가의 정보 전체를 관할하는 조직이 정작 그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만큼 허술하다는 뜻인가?
또, 백번 양보해서 이 말도 되지 않은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다고 치자. 제대로 된 정보조직이라면 한 개인이 어떤 프로젝트의 책임을 혼자 짊어지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했을 때, 이를 저지했어야 한다. 그것은 결국 음지를 지향하는 조직 구성원이 노출되는 최악의 상황이며, 오랫동안 그 요원을 만들기 위해 투입된 자원을 허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한 명의 정보 전문가를 만들기 위해 국정원은 얼마나 많은 세금을 썼을 것인가.
그러나 국정원은 그의 자살을 거의 방조하다시피 했다. 전문가가 정보를 삭제하는데 디가우징이 아닌 딜리트 키를 선택할 만큼 우왕좌왕하고 있는데도 조직은 그를 대신해 책임지지 않았다. 오히려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기 위해 분주했다.
임 과장이 죽자마자 그의 죽음을 방패삼아 이번 사건을 덮으려고 하는 국정원의 모습은 결국 그와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그러니 임 과장이 부득이 자살을 택할 수밖에. 아마도 2014년 '간첩 증거조작'사건에서 국정원 요원이 자살했던 것 역시 이와 같은 메커니즘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이다. 과연 이런 정보조직에서 누가 충실히 자신의 임무를 소화할 수 있을까? 조직이 책임지지 않고, 문제가 생기면 오히려 개인의 탓으로 모는 조직문화에서 누가 대담한 결정을 하고, 그것을 오롯이 자신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을까? 정보조직이 잘 굴러가기 위해서는 조직에 대한 신뢰와 팀워크를 기반으로 해야 하는데 지금 국정원은 스스로를 그것을 해하고 있다.
요컨대 지금 국정원이 할 일은 내부의 조직문화를 다시 쓰는 일이다. 그들이 보호해야 하는 이들은 휴민트가 아니라 내부의 조직원들이다. 휴민트야 다시 구축하면 되지만, 조직에 대한 구성원들의 신뢰가 사라지면 그 조직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휴민트들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지금은 국정원 요원들의 목숨을 더 걱정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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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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