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1층에 걸린 현 대통령 사진들이쯤되면 직업이 대통령인지 모델인진 헷갈릴 정도다. 대체 대통령들은 왜 직업체험을 좋아하는 것일까.
정효정
재미있는 것은 투르크메니스탄 사람들의 특이한 어법이다. 그들은 말끝마다 "우리 대통령"을 붙였다. 예를 들면 마리와 아슈하바트를 이어주는 신형 기차를 설명하면서 "우리 대통령이 국민들을 위해 새 기차를 사주셨다" 는 식이다. "대통령이 사준 게 아니고, 국민의 세금으로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을 한 것이 아니냐?" 라고 물어봤지만, "그게 그거 아니냐?"는 대답이다.
수긍은 가지 않지만, 더는 그들이 곤란해 할 질문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이 대통령이 '일을 하는 것'과 '일을 해주는 것'에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이 나라에 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또한 없다는 뜻일 거다. 실제로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의 '세계의 자유' 연례 보고서를 보면, 투르크메니스탄은 매년 북한, 시리아 등과 더불어 '자유 상황이 최악인 12개 국가, 혹은 지역'에 포함되어 있다.
고귀한 도시 메르브마리를 찾은 이유는 시내에서 30km 떨어진 메르브 유적 때문이었다. 메르브는 중요한 실크로드 유적의 하나다. 이곳은 기원전 3천 년 전부터 번성해,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인도와 중국을 이었던 중심축 역할을 했다. 페르시아제국, 알렉산더대왕, 쿠샨 왕조 등 다양한 지배자들을 거쳤다. 12세기경엔 인구 20만 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다. 그러다 13세기 몽골의 침략으로 무너지고 만다.
메르브는 드넓은 부지에 다양한 연대의 유적이 모여있다. 수소문 끝에 마리 박물관 연구원인 무함마드를 소개받았다. 독학으로 영어를 배웠다는 그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데다, 유적지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이 가능했다. 단지 그의 문제점이라면 배가 고프다는 것. 때는 라마단 기간이었다. 독실한 무슬림인 그는 해가 떠 있을 동안은 물도 마시지 않았다. 나는 그의 눈치를 보며 몰래 마른 목을 축여야 했다.
▲메르브 유적지의 낙타아프가니스탄 난민 벨루지족이 기르고 있는 낙타들. 낙타와 접촉했지만 메르스에 걸리진 않았다.
정효정
입구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보이는 유적은 키즈칼라다. 기원후 6세기에 지어져 600년 후인 셀주크 왕조 때도 사용을 했다는 건물이다. 15미터 높이의 독특한 주름이 잡힌 외벽이 인상적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인테리어다', '빗물의 배수시스템이다', '태양의 복사열 차단이다' 등의 다양한 학설이 있다.
까치발로 내부를 들여다보면 2층과 돔형의 구조가 남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건물은 "처녀의 성"이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몽골군이 침략했을 때 40명의 처녀가 이곳에서 뛰어내려 죽었다고 전해지기도 하고 과거 하렘으로 사용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단다. 여기서도 하렘은 우즈베키스탄과 마찬가지로 사과를 던져 맞추는 형식이다.
▲키즈칼라스커트 주름같은 외벽으로 유명한 메르브의 대표적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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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에서 바라본 키즈칼라 주름모양이 꼭 핑거비스켓을 이어 붙여 놓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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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기도해 준 남자 셀주크투르크의 왕이었던 술탄산자르 영묘에서 무함마드는 로맨틱한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신이 났다. 술탄 산자르는 메르브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할 때의 왕이다. 젊은 왕은 어느 날 절세미녀를 만났다. 미녀는 왕에게 '자신의 발을 보지 말라', '머리를 빗을 때 훔쳐보지 말라', '만지지 말라'라는 세 가지 조건을 내세운 후 결혼했다.
하지만 두 달 후 왕은 궁금증을 못 이겨 그녀의 발을 보았고, 발이 땅에 닿지 않고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머리를 빗을 때 머리를 떼서 무릎에 얹고 빗는 것을 보았고, 욕심에 못 이겨 그녀를 안았을 때는 그 몸에 뼈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이 아닌 천녀였던 것이다.
결국 천녀는 하늘로 돌아갔고, 술탄 산자르는 비탄에 빠져 천녀에게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달라며 애원했다. 결국 천녀는 매주 금요일에 비둘기로 변해서 그를 만나러 왔고, 지금도 술탄 산자르의 영묘 천장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있다고 한다. 비둘기로 변한 천녀와 술탄을 만나게 하기 위해서다. 무함마드는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증거를 보여주겠다며 의기양양하게 천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실제로 중앙 돔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있고 그 바로 아래는 관이 안치되어 있었다.
▲술탄 산자르 영묘 젊은 왕과 천녀와의 로맨스가 깃들어 있는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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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녀가 드나들었다는 작은 구멍건물의 돔의 중앙에는 작은 구멍이 있고 이 구멍을 통해 천녀와 왕이 만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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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브 유적을 떠나기 전 우리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두 동료가 묻혀있다는 무덤에 갔다. 이들은 이곳에 이슬람교를 가져온 선지자라고 한다. 이곳은 중요한 성지이기 때문에 그는 잠시 기도를 드리겠다고 했다. 그가 기도를 하는 동안 나는 천천히 돔형 건물과 내부의 관을 살펴보았다. 건물 내부에는 파란색과 하늘색의 타일장식이 있었고, 팔각형 별 안에는 이슬람을 뜻하는 기호가 새겨져 있었다. 기도를 마친 무함마드는 비밀이야기를 하듯 내게 말했다.
"널 위해 기도했어."만난 지 두 시간도 안 된 그가 날 위해 기도를 해주다니. 조금 감동해서 물어봤다.
"어떤 기도를 했어?"머릿속에는 내가 바라는 것들이 떠올랐다
"응, 네가 어서 결혼을 해서 다음에는 남편과 아이와 함께 이곳을 함께 찾길 바란다고 기도 했어."잠시 할 말을 잃었다. 중앙아시아에는 내 결혼을 자신들의 문제인양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1400년 전 가르침을 그대로 이으며 살아가고, 가족과 공동체를 중요시 여기는 무슬림들의 특성이다. 내가 시큰둥해 하자 그는 답답해했다. 그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자신의 삶이 행복하며, 그의 행복은 종교와 결혼으로 완성되었다고 했다.
그날 밤, 그는 아슈하바트로 향하는 나를 배웅 왔다. 내 짐을 들어 기차 안에 실어주고, 내 자리까지 살펴봐준 후, 그는 말했다.
"우리는 다음에 다시 보게 될 거야. 지금과 차이가 있다면 너는 네 남편과 함께 있을 거라는 거지."나는 그냥 알겠노라고 웃으며 그를 보냈다.
기차가 마리를 떠난다. 오늘 나는 실크로드 교역의 중심이었던 메르브, 그 길의 중심에 섰다. 먼 길을 떠난 사람들은 이곳에 모였다가 다시 이란으로, 아프가니스탄으로, 인도로, 우즈베키스탄으로 흩어졌다. 메르브 방문으로 실크로드 여행은 절반을 완수했다.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투르크메니스탄에 온지 이제 겨우 이틀째이다. 앞으로 더 어떤 일이 있을까.
여행정보 |
- 투르크메니스탄 비자 받기 투르크메니스탄은 비자 받기가 까다로운 나라 중 하나다. 관광비자를 발급받기 위해선 투르크메니스탄 외무성이 인정한 초청장이 필수다. 또한 수도를 제외한 지역은 가이드를 대동해야하며 비용이 발생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선택하는 방법은 5일짜리 경유비자다. 경유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출발국가와 도착국가의 비자가 있어야 한다. 투르크메니스탄 인접 국가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이다.
나는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인근인 파라브(Parab) 국경에서 출발해서 이란 바즈기란(Bajgiran) 국경을 넘었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우즈베키스탄 히바로 향하는 다쉬오구즈(Dashoguz) 국경도 여행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루트다. 경유비자 발급의 경우 우즈베키스탄에서 신청하면 20일, 타지키스탄에서 신청하면 7일이 걸린다(2014년 기준).
* 타지키스탄 두샨베에서 신청시 1) 출발국가와 도착국가 비자 미리 받기 2) 두샨베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에서 자필 신청서 작성(10 Akhunbabaeva, Dushanbe, Tajikistan (+992) 372 242 660) 3) 일주일후 다시 가서 NBP(national Bank of Pakistan)에서 55달러 입금 후 입금증 제출 4)비자발급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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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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