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럼씨네 집에서 만난 사람들. 이들은 나의 무지막지한 영어를 환대해 주었다.
송성영
눈빛 맑은 그들은 힌디어는 물론이고 영어조차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때론 동문서답으로 답하는 어리숙한 내게 큰 웃음으로 반겼다. 환하게 웃는 이들을 보며 사람과 사람의 소통은 유창한 말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뿐만아니라 이들과 몸으로 통하는 것도 있었다. 부럼선생의 사촌 동생, 밧샹씨가 내게 물었다.
"나는 한국의 태권도를 배웠습니다. 당신도 할 줄 압니까?""물론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어려서부터 태권도를 배웁니다. 군대에서는 기본으로 배웁니다.""당신은 군인이었습니까?""건강한 한국 남자들은 모두 군인이 되어야 합니다.""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당신은 오랫동안 태권도를 수련 했겠네요.""나는 어려서부터 10년 넘게 태권도를 수련했고 가르치기 까지 했습니다. 당신의 태권도 실력을 보고 싶군요."날렵한 몸매의 그가 마당으로 나서 발차기를 선보였다. 1년 정도 수련했다는 그의 발차기 동작은 파괴력이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엉거주춤 했다. 그가 내게 몇 가지 태권도 동작을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앞 차기, 옆 차기, 뒤돌아 차기 등 몇 가지 태권도 시범을 나름 날렵하게 보여주자 모두가 박수로 화답했다.
박수 소리에 기고만장한 나는 내친김에 상대방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간단한 태권도 기술을 알려줬다. 대련할 때 흔히 쓰는, 상대가 돌려 차기로 공격해 올 때 순간적으로 맞받아 뒤돌아 차는 기술이다. 그가 나의 상대가 되어 돌려차기로 공격했고 내 발은 순식간에 그의 얼굴 앞에서 멈췄다. 깜짝 놀란 그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며 내게 '마스터'라는 호칭을 붙였다. 나는 점점 기고만장했다.
"파괴적인 운동은 그리 좋은 운동은 아니라고 봅니다. 나는 상대를 공격하기보다는 부드러운 동작으로 상대의 힘을 이용해 방어하는 중국의 쿵푸, 태극권을 좋아 합니다."영어로 소통할 때 늘 그랬듯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분명했다. 하지만 정확한 영어로 전달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들의 표정으로 보아서는 대충 내 말 뜻을 이해하는 듯 했다. 중국 무술 쿵푸를 얘기하다가 영화배우 '블루스 리'와 '이연걸'까지 언급했다.
사실 나는 코사니의 지식인들이라 할 수 있는 이들과 깊이 있는 '지식 놀음'을 하고 싶었다. 인도의 정치와 철학과 명상, 생태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유창한 영어로 질문을 던지는 것은 고사하고 이들이 답하는 말조차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나였다.
"당신은 인도의 어느 곳을 여행할 예정입니까?""나도 잘 모릅니다. 내 발길 닿는 곳이 목적지입니다. 다만 코뮤니스트 정부가 있었던 남인도 서벵갈주와 켈랄라주, 그리고 인도의 철학자이자 생태운동가인 반다나 시바가 운영하는 나브단야의 씨앗 농장에 가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갈 수 있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공산당 정부와 나브단야의 씨앗 농장 등을 열거하자 이들은 영어 대신 무지막지한 태권도를 선 보였던 나를 달리 보는 눈치였다. 철학자 풍모를 지닌 라미쉬 쿠마르씨가 장난 기 섞인 말투로 내게 말했다.
"영어 때문에 그곳을 깊이 알기는 쉽지 않겠군요." "노프라블럼!" 노프라블럼을 외치자 모두가 웃었다. 영어가 서툰 인도 사람들은 난처한 문제가 생기거나 소통이 잘 되지 않을 때 '노프라블럼'으로 마무리 한다. 나도 어느새 그 '노프라블럼'을 난발하고 있었다.
"영어도 잘 못하면서 어떻게 5개월 넘는 인도여행을 결심했습니까?""내가 가장 잘 구사하는 언어는 마음과 웃음입니다. 마음과 웃음은 다 통합니다.""좋은 생각입니다."'언어 소통이 안되는 만큼 가슴이 예민하게 열리기 마련이다. 그 예민한 가슴으로 상대의 마음을 읽기도 한다.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그 오해는 대체로 웃음으로 마무리 된다. 가슴이 예민하게 열리면 눈빛이나 손짓 몸짓 등으로 그 사람의 의중을 어느 정도 간파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그에게 덧붙여 주고 싶었지만 영어의 장벽은 높기만 했다.
어쩌면 이들은 내 무지한 영어실력을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비웃음 섞인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설령 이들이 나를 비웃었다 한들 내가 이들에게 좋은 마음으로 다가가 언어의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고 또한 지금 내 마음 상태가 평화로우면 족하지 아니한가.
언어는 상대의 주장을 들어주기 보다는 자기주장을 펼 때 더 많이 사용된다. 논쟁 속에서는 꼭 필요한 말만 하지 않는다. 논쟁을 하다보면 감정이 뒤섞이게 되고 급기야 언어를 공격의 수단으로 사용하게 된다. 내공이 부족한 나는 그동안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무수한 말들을 난발하며 살아왔다.
내가 만약 영어가 유창했다면 한국에서처럼 그들과 더불어 정치와 철학과 명상을 논했을 것이다. 기고만장하게 태권도 시범을 보여줬듯이 온갖 지식들을 동원해 입에 거품을 물어가며 자기과시의 논쟁을 벌였을 것이다. 무지한 영어 실력 덕분에 부질없는 논쟁 대신 가슴과 웃음으로 모두에게 웃음을 선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과 '웃음'이라는 시답잖은 말로 건방을 떤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영지버섯에 눈이 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