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큼한 발효 음식 앞에서 눈물을 보인 기탄잘리.
송성영
그렇게 우리는 '엄마'의 눈치를 보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시큼한 요구르트 밥을 꾸역꾸역 우겨 넣었다. 점점 시큼한 맛에 적응이 되어가는 내 입가에는 어느새 미소가 번져 나왔다. 뜰 마루에 엎드려 숙제를 하는 모습이나 밥을 먹으라고 나무라는 엄마의 모습이나 오래 전 내 어린 시절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시큼한 건강식을 놓고 벌이는 모녀간의 신경전을 지켜보며 부럼씨에게 '당신 부인은 전형적인 한국의 엄마와 닮아 있다'고 말해줬다.
"당신의 아내는 내 어린 시절의 엄마와 똑같습니다. 지금 당신의 아내는 나의 젊은 엄마입니다."우리 엄마는 아직도 나이든 내게 '밥 먹었냐' '더 먹어라' 그 무엇보다도 밥을 챙기신다고 덧붙여 말했더니 부럼씨 역시 인도 엄마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들과 엄마의 발음도 똑같다. 우리처럼 엄마를 '엄마'라고 발음한다. (아빠도 마찬가지다.)
하르셋과 나는 '남자답게' 식기를 말끔하게 비웠다. 하지만 기탄잘리의 식기는 여전히 고봉이다. 기탄잘리는 엄마에게 '그만 먹으면 안돼요?'라는 애원의 눈빛을 보낸다. 하지만 엄마의 눈초리는 단호하다. 공연히 손가락을 빨며 구원 요청하듯이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옆에서 누나를 애처롭게 바라보던 동생 하르셋이 콧구멍을 후벼 판 손가락을 누나의 식판에 가져다 대는 시늉을 하며 장난을 치자 엄마가 야단을 치며 말한다.
"찌지~ 찌지~""예? 찌지~ 그러셨지요? 어떤 뜻입니까?"예상대로 그녀가 말한 '찌지~'는 더러운 행동을 했을 때 나오는 우리의 의성어와 똑같았다. 장난끼 많은 부럼씨는 조금 있으면 기탄잘리가 엄마에게 울면서 하소연할 것이라고 말한다. 잠시 후 그 말이 딱 맞아 떨어진다. 사슴처럼 큰 기탄잘리의 눈망울이 그렁그렁하더니 결국 울음보를 터트리고 만다.
부럼씨와 함께 집을 나서면서 기탄잘리에게 "행운을 빈다, 좀 더 노력해 봐라"라고 말했더니 부럼씨가 푸하하하 크게 웃는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기탄잘리에게 약을 올린 것 같아서 좀 미안하다. 기탄잘리는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었고 내 자식들의 어린 시절이었다. 타고르의 시선, <기탄잘리>가 님(신)에게 다가가고자 갈망하는 노래라면 부럼씨의 딸, 기탄잘리는 그렁그렁한 그 큰 눈망울을 통해 내 기억 속에서 잠들어 있는 순수한 세계를 노래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뱃속이 아주 편안해 졌다. 부럼씨의 아내, 래카 라인이 내게 강압적으로 주입시킨 발효 식품 덕분이었다. '엄마 말을 잘 들어야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법이다.' 그 말이 새삼 떠올랐다. 월세방을 잡아 놓았기에 코사니를 떠날 날이 아직 20일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부럼씨네 가족들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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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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