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이 근무한 부서인 의정부가 있었던 자리. 별표 부분이다. 경복궁 앞 광화문광장에 있다.
김종성
방탄 총리를 내세울 수 없었던 옛날 군주들
<경국대전>에 나오는 의정부의 책임은 곧 영의정의 책무였다. 규정만 놓고 보면, 영의정의 책무는 임금인 주상의 책무와 겹쳤다. 영의정의 직무와 주상의 직무가 겹쳤고 대한민국 총리의 직무와 대통령의 직무가 겹치고 있으니, 영의정과 총리가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임금이 영의정을 임명하기는 했지만, 영의정은 임금보다는 기득권층인 사대부 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임금이 국정운영의 축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이방원과 재상(영의정을 포함하는)이 그 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정도전이 유혈 충돌을 벌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의정은 사대부 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면서 임금의 국정운영을 견제하는 자리였다.
그래서 영의정은 수석대신의 위상뿐만 아니라, 집권여당의 당수나 기득권층의 대표 같은 위상도 함께 갖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임금이 자신에 대한 비판의 화살을 피하고자 영의정을 대신 사퇴시키는 것은 조선시대 정치풍토에서는 낯선 일이었다. 그래서 옛날 왕들은 자기를 대신해 사퇴해줄 방탄용 총리를 둘 수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옛날 군주들은 방탄용 총리를 둔 대한민국 대통령들을 부러워할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 파탄이나 대외관계 악화 또는 천재지변 등이 발생했을 경우에, 옛날 왕들은 어떤 식으로 책임을 졌을까? 남을 대신 사퇴시킬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 반성을 통해 그들은 임금 자리를 보전했다.
임금의 자기반성은 여러 가지 형식으로 표현되었다. 식사 때 반찬 수를 줄이거나, 후궁의 침실에 들지 않거나, 하늘과 땅에 제사(기우제 포함)를 올리거나, 백성들의 의견을 구하는 등의 방법이 있었다.
특히 기우제의 경우에는, 제사를 지내면 기적적으로 비가 내릴 거라는 미신적인 기대감으로 지냈다기보다는, 제사를 통해 임금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세상만물이 잘 돌아가리라는 비교적 합리적인 기대감으로 지냈다고 해석하는 게 이치에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