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안마해주는 박원순 시장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해 7월 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제36대 서울시장 취임식'에서 시민의 어깨를 안마해주고 있다.
유성호
아직 시민들의 주요한 관심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여파에 쏠려 있기는 하지만, 2015년 7월 1일은 민선 6기 지자체 단체장들이 임기를 시작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라는 것도 되새겨 보자. 1년이면 지난해 새로 취임한 전국의 각 단체장들이 각각 책임지고 있는 지자체를 어떻게 이끌고 있는지 확인해볼 수 있는 충분한 기간이 아닐까 싶다.
단체장 가운데 사회 혁신이라는 화두와 가장 관계가 깊은 인물을 꼽으라면 아마 대다수는 주저 없이 박원순 서울시장을 떠올릴 것이다. 지난해 두 번째로 시장에 취임하면서 그가 제기한 2기 시정의 핵심어도 '혁신'과 '변화'였다.
그는 "아직도 우리에게는 혁신해야할 과제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지적하면서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것이 서울시 안이든 밖이든 서울시가 가진 모든 권한, 모든 관할을 넘어서서 사회변화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나의 책무"며 "시민들도 그걸 기대하고 저를 뽑은 거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사명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뉴시스> 2014년 7월 1일자)
스마트 하드웨어가 잘 갖춰지면 스마트 도시일까?그러면 서울시는 박 시장의 언약대로 지난 한 해 동안 혁신의 도시로 변화를 거듭해왔을까? 이에 대한 평가는 엉뚱하게도(?)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한발 앞서 나왔다. 세계적 명성을 가지고 있는 영국의 사회 혁신가 제프 멀건(Jeoff Mulgan)은 지난 6월 14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 기고에서 세계의 주요 도시에서 혁신을 이끌어 왔던 시장들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으로 박원순 서울시장을 꼽았다.
나머지는 독일 베를린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시장, 프랑스 파리 베르트랑 들라노에 시장, 미국 뉴욕 마이클 블룸버스 시장, 콜롬비아 메데인의 세르히오 파하르인데 이 가운데 현직은 박원순 시장뿐이었다.
그런데 제프 멀건은 이 기사에서 도시 혁신을 위한 리더십으로 특히 세 가지를 지목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가장 좋은 아이디어는 정책 담당자가 아닌 풀뿌리에서 더욱 유기적으로 잘 나올 수"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른바 '스마트 도시'는 시민의 참여 없이 스마트 하드웨어로 겉만 그럴싸하게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던 점이다.
마을 만들기를 필두로 한 풀뿌리 차원의 혁신 활동 활성화와 지속적으로 시민참여를 강조해왔던 박원순 시장에 대해 높은 점수를 준 근거가 여기에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스마트 도시 건설의 나쁜 사례의 하나로 한국의 송도를 꼽았다는 것이다.
셋째로, 그는 위대한 도시의 가장 핵심적인 도전 과제로서 위와 아래, 부자와 서민, 빠른 것과 느린 것을 어떻게 연결해낼 것인가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촉구한다. 제프 멀건은 세계의 모든 도시가 실리콘 밸리 모델을 따라하고 싶어 하지만, 사실 실리콘 밸리는 부(wealth)가 서민들에게 전달되는 효과(낙수효과; trickle-down)는 거의 없었고 미국은 과거보다 부익부 빈익빈이 더 심해졌다고 비판한다.
한마디로 그럴싸한 첨단기술 단지 설립에 몰두하기보다는 심각해지는 불평등과 격차를 줄이는 시정을 펼쳐야 진정한 혁신도시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주민들로부터 올라오는 창조적 아이디어', '시민들의 참여가 활발한 스마트 도시', 그리고 '불평등과 격차가 줄어드는 도시' 등 제프 멀건이 지목했던 대목은 진정한 혁신 도시가 되기 위해 특별히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여전히 많은 경우 혁신을 말하면서 일부 전문가들의 관념적인 정책 비전에 의존하거나, '유비쿼터스 도시'가 한때 유행했던 것처럼 스마트 하드웨어로 도배한 정책 설계가 마치 혁신인 것으로 포장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각종 첨단 시설이나 첨단 기술 집적 단지를 만들면서 막상 빈부격차나 서민들의 복지를 외면하는 사례도 넘쳐난다. 사실 지금도 일부 거대기업들이 주도하여 서울 곳곳에 복합 쇼핑몰 입점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서울시가 일전에 발표했던 한전부지~잠실운동장을 잇는 '국제교류 복합지구' 계획안에 대한 비판 의견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고 수용되어야 한다.
아직도 낯선 단어 '사회 혁신', 그게 도대체 뭐야? 그런데 사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중요한 한 가지 시사점을 발견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혁신이라는 개념을 연상하면 대개 특별한 전문지식과 첨단기술, 또는 새롭게 구축된 거대규모의 시설물과 연결 짓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혁신을 주로 '기술 혁신'과 연결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도시의 혁신과 변화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강조하는 것은 기술 혁신보다는 '사회 혁신(social innovation)'이다. 사회 혁신가 제프 멀건이 가디언 기사에서 비판했던 핵심도 여기에 있다. 정책 전문가들이나 스마트 하드웨어, 또는 실리콘 밸리 같은 화려한 집적단지 자체가 (기술혁신은 될지언정) 사회 혁신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친숙한 기술 혁신이나 업무 혁신과 다른 사회 혁신은 도대체 무엇일까? 사실 온라인에서 우리말로 사회 혁신을 검색해보면 거의 쓸 만한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사회관계망(SNS)에서 언급되지도 않고,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되는 경우도 드물며 심지어 전문자료에서도 그렇게 흔하게 눈에 띄는 단어가 아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사회 혁신 키워드를 찾아내기 이전에 사회 혁신 그 자체가 키워드로서 더 많은 시민들과 공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회 혁신은 "현실의 사회를 살아가는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 생활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꾼다는 점에서 기존에 익숙한 사회변화 방법론인 '사회 개혁'과 같은 목표를 추구한다. 다만 방법과 경로, 즉 전략이 다를 뿐이다.
즉, 사회 혁신은 사회 문제를 접근하는 태도와 인식의 변화뿐 아니라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실행을 수반하는데, 작더라도 대안적 아이디어를 실제 현실로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혁신적 구상을 혁신적 실물로 현실화시키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회 혁신의 매력이자 존재 이유다. 이 대목에서 주로 문제 제기와 주의 환기, 청원을 목표로 했던 기존의 운동(movement)이나 캠페인(campaign)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 혁신은 주어진 거시적 환경 아래에서 실제 혁신적인 실험을 해본다는 취지를 담고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풀뿌리 단위에서의 실행전략과 연계되어 있다. 또한 사회 혁신이 사회운동일뿐 아니라 비즈니스 영역을 포괄하는 매우 넓은 지평에 걸쳐 있게 되는 이유도 바로 실행을 포함해야 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특히 사회 혁신은 전통적으로 의존했던 두 가지 해법인 '시장에 의한 해법'과 '국가에 의한 해법'이 현재 시점에서 한계에 직면한 그 지점에서, 시장과 국가 사이의 넓은 공백지대를 파고들어 문제의 해법을 찾으려 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예를 들어 (1) 국가와 시장이 이미 해결하는 데 모두 실패했거나, (2) 선거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해 국가가 계속 외면하고 있거나, (3) 수익이 나지 않아 자본투자의 관심이 없어 시장이 외면하거나, (4) 국가가 책임지고 있지만 오히려 문제를 키우고 있거나, (5) 시장이 장악하여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다수 시민들에게는 오히려 피해를 주거나, (6) 국가와 시장이 각각 국지적인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더 큰 문제(환경)를 위험에 빠트리는 등 영역들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확대되는 사정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사회 혁신이 다수 시민들이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Social needs)으로부터 출발하지만, 대부분 처음부터 정책적으로 기획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개혁과 다를 수 있다. 마치 실리콘밸리의 벤처창업자들이 정책적으로 기획하여 시작되지 않는 것처럼, 많은 경우 초기에는 시민들의 삶의 곳곳에서 초보적이고 자연발생적으로 시도되는 혁신적인 잠재 가치들을 '발견'하고 여기에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고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사회 혁신의 힘과 동력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실 절실한 시민의 필요가 있는 많은 곳들에서 이미 시민들은 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비록 매우 제한된 공간에서 매우 부족한 자원만을 갖고) 행동을 시작하고 있을 개연성이 매우 높으며, 그러한 시도 안에서 문제를 풀 솔루션(해결책)은 배양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마을 만들기나 협동조합 설립 등이 정부나 지자체의 정책적 지원이 있기 이전부터 자생적으로 주민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었던 점이 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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