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판결 VS 판결> 표지
개마고원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한다. 이건 당위다. 법률은 다수의 평등을 위해 존재하고, 누구에게나 같은 잣대로 차별 없이 적용되고 집행돼야 한다. 부자라고 더 가혹해도 안 되지만, 더 관대해서도 안 된다. 마찬가지로 가난하다고 해서 처벌을 더 받거나 덜 받아서도 안 된다. 이건 누구나 공감하리라."(본문 162쪽)
이러한 법 정신은 성경에도 나온다.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레위기 19장 15절)라고 말한다. 무엇인가를 판단해야 할 위치에 있는 지도자는 불편부당해야 함을 언급한다.
<판결 vs 판결>(개마고원 펴냄)의 저자 김용국은 묻는다. "현실은 어떨까?"라고, 이 물음은 그렇지 않은 현실을 반영하는 질문에 다름없다. "법대로 하는데 왜 판결은 다를까?"라는 부제에서 법의 한계성이 제대로 읽힌다. 정치적 판결, 권력에 편향된 판결, 대통령 눈치를 보는 판결을 수도 없이 경험한 국민은 그 이유를 이미 알고 있다.
재벌 3·5법칙, 유전집유 무전실형역설적이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초 신년기자회견에서 "기업인이라고 해서 어떤 특혜를 받는 것도 안 되겠지만 또 기업인이라고 해서 역차별을 받아서도 안 된다"라고 말했다.
불편부당을 말하는 듯하지만 뉘앙스는 사뭇 다르다. 언제 기업인이 역차별을 받았던 적이 있었던가. 우리나라의 재벌과 부자들은 특혜를 받은 적은 있어도 역차별을 당한 적은 없다.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친재벌적이고 친부자적인 발상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역시 재판에서도 이런 정의롭지 않음은 비일비재하다. 회장님의 하루 일당은 5억 원이지만, 평민의 노역은 5만 원의 가치밖에 없다. 5억 원짜리 노역을 한 회장님은 대주그룹의 허재호 회장이고, 5만 원짜리 노역을 한 사람은 장애인 운동가 박경석씨다.
허 회장은 조세포탈과 횡령으로 재판을 받았다. 법대로라면 1000억 원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그러나 판결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508억 원이었다. 그것도 2심에서 254억 원으로 줄었고 3년 안에 상환해야 한다는 규정인 환형유치 때문에 하루 노역 일당을 5억 원으로 계산해주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와는 아주 대조적인 건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인 박경석씨에게 내려진 벌금형이다. 집시법 위반과 교통법 위반으로 벌금 200만 원을 부과받았으나 벌금 대신 노역을 택했다. 그런데 일당은 5만 원이었다. 만민에게 법이 평등하다는 말은 그야말로 허울 좋은 개살구다.
세간에는 '재벌 3·5법칙'이란 이야기가 떠돈다.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기업 총수에게 3년 징역에 5년 집행유예를 내리는 우스운 재판을 비꼬아 하는 말이다. 유수한 재벌 회장들이 줄줄이 법 앞에 섰지만, 대부분 이 우스운 법칙을 적용받았음을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익히 알고 있다.
2012년 한화의 김승연 회장이 1500억 원 배임으로 징역 4년과 벌금 51억 원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될 때만 해도 '재벌 3·5법칙'이 깨지는 것 같아 내심 많은 이들이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후에 여지없이 징역 3년 집행유예로 끝났다. 저자는 "화려한 전과를 감안할 때 집행유예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본문 157쪽)고 꼬집고 있다. 동감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축의금 15만 원을 훔쳤던 윤아무개씨는 누범이란 이유로 집행유예 없는 3년 징역형이 언도돼 복역 중이다. 500만 원을 훔친 죄로 17년 형을 선고받고 갇혔던 탈주범 지강헌이 한 말은 유명하다.
"권력에 의해 법을 처리하는 법관들이 저주스럽고 죽이고 싶다. 이 사회는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다. 돈에 판검사가 매수되다니 말이 되느냐. 모든 판검사를 죽이고 싶다."(본문 149쪽) 물론 그의 말을 동조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의 한 서린 유서가 말하는 의미는 우리 사회가 기억해야 하리라.
벤츠 여검사 때문에 '김영란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