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을 유람할 수 있는 영산포 앞 황포돛배.
김종성
나주 시장에서 가까운 영산강변으로 나아가 한껏 드넓어진 영산강을 보며 무안, 목포 방면의 남쪽으로 달려갔다. 강 이름의 모태가 된 영산교 아래 하얀 등대가 서있는 영산포에서 페달질을 멈추었다. 여행자가 쉬어갈 수 있는 그늘 정자, 매점, 영산강을 유람할 수 있는 황포돛배가 둥둥 떠 있다.
지금은 포구의 흔적이 사라지고 '홍어의 거리' 등이 자리한 관광지가 되었지만 영산포구는 옛 영산강변의 영화를 크게 누렸던 곳이다. 영산강 물길을 따라 먼 바다에서 크고 작은 배들이 드나들고, 사람과 물산들이 영산포구에 모여들었던, 내륙 항구로 호남 최대의 포구였다. 영산강이라는 강 이름을 얻게 된 것도 바로 영산포구에서 나온 것이다.
영산강의 명칭은 강 중류에 자리한 나주와 영산포에 의해 생겨났다. 나주는 통일신라 때 금성(錦城)으로 불리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영산강을 금천(錦川), 금강(錦江)이라 했고 나루터는 금강진(錦江津)이라 했다. 고려시대에 신안군 흑산면에 속한 영산도(永山島) 사람들이 왜구를 피해 나주 남쪽의 강변에 마을을 개척한 후, 그곳을 영산포(榮山浦)로 부르게 되었고, 조선시대 초기 영산포가 크게 번창하자 강 이름도 영산강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