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북리 백제유적 주요 유구. 사진이 없어서 팜플릿을 오려 붙였다.
김병기
첫째 딸의 꿈은 고고학자30여 분 동안 발굴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들은 말 중에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것은 두 가지다. 고고학자들은 곡괭이와 호미뿐만이 아니라 붓도 가지고 다닌다는 것. 기와조각이라도 나오면 도화지가 아니라 땅에 붓질을 하면서 흙을 조심스럽게 털어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1500년 전 조상들은 기와를 이용해 과학적으로 배수로를 팠다는 사실이다. 현장 설명을 마치고 연구소로 들어가려는 최 연구원을 아빠 기자가 붙잡았다.
"10분 정도만 시간을 내주실 수 있나요? 잠깐 인터뷰를 했으면 해서요.""예?"즉석 인터뷰는 미리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습관성이다. 이번에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취재의 기본인 인터뷰 요령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손수건으로 연신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씻어내던 그의 얼굴에서 '지금까지 다 설명을 했는데, 무슨 인터뷰냐?'라고 말하는 게 읽혔다. 하지만 아빠 기자는 숨 돌릴 틈 없이 질문을 던졌다.
"다른 게 아니고, 큰딸아이가 고고학자의 꿈을 키우고 있는데, 고고학은 뭔지 간단하게 설명해주시면 어떨까요?"이번에도 큰녀석 핑계를 댔는데, 거짓말은 아니었다. 당시 집 앞 놀이터의 모래를 파면서 자주 놀았던 녀석의 꿈은 고고학자였다. 플라스틱 딱지나 총알 등 모래 속에서 제 딴에 신기한 걸 찾아내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아빠에게 보여주곤 했다.
빨리 연구소로 돌아가고 싶어서였는지, 아빠 기자의 질문이 생뚱맞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잠시 멈칫거렸다.
"아, 예……. 음…….""잠깐만 시간 내주시면 돼요."앙코르를 요청하듯 한 번 더 졸랐다.
"고고학은 물음표입니다. 정답이 없어요. 땅을 파야 합니다. 땅을 파서 뭐가 나와도 항상 물음표를 던져야 합니다. 왜, 이것이 여기에 있는 건지 되물어야 하고, 이것이 어떤 기능을 했는지? 이것이 여기에 있어야 할 이유가 뭔지? 옆에서 발견된 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물음표입니다."한국판 인디아나 존스, 땅속에서 '지혜' 발굴 그는 선수였다. 단순하고 쉽게, 귀에 콕 박히도록 송곳 답변을 했다. 고고학을 진정으로 좋아하고 자부심이 충만한 젊은 연구자였다. 추상적인 말만 늘어놓는 취재원과는 몇 시간 동안 인터뷰를 해도 기사의 제목이 나오지 않는데 그는 첫 대답에서 기막힌 제목을 안겨줬다.
'고고학은 물음표다' 그는 또 "만날 삽과 호미로 땅을 파면서 고되기도 하지만 재미가 있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한다"면서 "내 목표는 1500년 전 성왕이 부여로 도읍을 옮긴 뒤 건설한 왕궁을 찾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10여 분의 제한된 인터뷰 시간, 기사의 제목을 뽑았으면 한 마디라도 더 들어서 살을 붙여야한다. 속사포처럼 또 다른 질문을 쏟아냈다.
- 호미질을 하면서 찾아낸 백제 유적의 가장 큰 특징은 뭐라고 할 수 있죠?"예술성이죠. 기와 한 장을 만들더라도 꼼꼼하게 잘 만듭니다. 전문가적 장인 정신이 존경스럽습니다."
- 그런데 연구원님이 고고학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땅을 파는 게 재미있고, 그 속에서 나오는 유물을 보면서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발견하는 게 신기했습니다. 오늘도 땅을 파면서 과거 사람들의 삶의 지혜를 발굴하고 현대인들에게 전달해주고 싶어요."
그는 한국판 인디아나 존스였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호미나 곡괭이로 땅을 파면서 물음표를 던지고 있을 것이다. 깨진 기와 조각이라도 발견하면 잠시 일손을 멈추고 땅 위에 철퍼덕 앉아서 물음표를 던지고 있을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데 그는 인터뷰를 마친 뒤 나에게 되물었다.
"혹시, 이런 데(인터뷰 하는데) 선수 아니세요?""그냥 시민인데요. 너무 고맙습니다." 그가 나를 알아본 것 같아 순간 우쭐했는데, 녀석들은 그 말의 의미도 모른 채 '인디아나 존스'의 얼굴만 쳐다봤다.
▲한국판 인디아나존스의 인터뷰 기사. '고고학은 물음표다'.
김병기
고고학은 '물음표'... 취재도 마찬가지 그의 말처럼 취재 과정도 고고학이 던지는 물음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에게 취재의 기본을 가르쳐주려고 했는데, 그가 주말에 나와서 무료로 아이들에게 취재의 정석을 가르쳐줬다. 발굴 현장에서처럼 취재 현장에서도 물음표를 계속 던져야 한다. 땅을 파고 들어가서 호미질과 붓질을 하면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미리 예습을 하고 왔다면 질문의 수준도 그만큼 높아지고 취재원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실천하기란 쉬운 게 아니다. 문제는 시간이다. 여행지에 대해 예습할 시간도, 여행지에 와서 치밀하게 사물을 관찰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또 집요하게 물음표를 던질 정도로 집중력이 있거나, 관심이 있는 사안도 별로 없었다. 볼거리도 많고, 놀거리도 많은 데 한곳에 눌러 앉으면 녀석들이 대뜸 얼굴을 찡그리면서 한마디씩 했다.
"아빠! 이젠 다른 데 가요.""엄마! 다리가 너무 아파요."녀석들은 취재기자가 아니라 쉽게 싫증을 내는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여행지에서 만드는 가족신문의 한계이다. 하지만 취재수첩에 기록만 하고 다닌다면 아이들에게 여행은 악몽이다. 게다가 해수욕장과 눈썰매장이 코앞인데, 취재수첩을 들고 기록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아이들의 취재열기가 뜨뜻미지근하다고 해서 심하게 다그칠 수 없었다.
하지만 곧바로 다음 행선지인 국립부여박물관으로 강행군 했다. 2박 3일간의 여행일정이어서 볼 것은 많은데 시간이 없었다. 녀석들이 손톱을 물어뜯으며 선택한 곳이다. 물론 엄마 기자가 좀 보태기는 했다.
가족신문 2호 여행 경로> |
2007년 8월 3일 :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 발굴 현장->국립부여박물관 2007년 8월 4일 : 부소산성->고란사->낙화암->정림사지 박물관->궁남지 2007년 8월 5일 :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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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인디아나 존스에게 배운 '물음표' 던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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