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 (부분)디에고 벨라스케스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부분) 로마 도리아팜필리 미술관
박용은
자, 이제 벨라스케스의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을 다시 봅니다. 이상화된 이전의 초상화들에선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들로 인해 첫 부분에 나열했던 고집 세고 성질 고약한 영감님의 특징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실제로 일중독에, 고집스럽고 성급한 성격이었던 인노켄티우스 10세가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인노켄티우스 10세도 이 그림을 보고 처음엔 너무 현실적인 자신의 모습이 못마땅했으나, 나중에는 "지극히 생생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걸 보면 (역사에서 부정적인 평가와는 별개로) 괜히 교황은 아닌가 봅니다. 어쨌든 벨라스케스는 이후 18세기의 고야, 19세기의 마네와 인상주의, 심지어 20세기의 피카소와 프란시스 베이컨 같은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화가 중의 화가'(마네의 편지 중)라는 평가까지 받게 됩니다.
벨라스케스를 만나고 나니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에서의 숙제를 다 한 것 같아서 나머지 그림들은 슬슬 스쳐 지나갑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궁전이었던 곳을 미술관으로 꾸민 탓에 그림들이 궁전 주인들의 컬렉션처럼 배치되어 전문 미술관처럼 한 그림에 집중하기가 쉽지도 않았습니다. 아, 물론 벨라스케스의 그림은 한 방에 따로 전시실을 마련해서 집중적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합니다. 그렇게 명작들을 스치듯 둘러보고 있는데 그만 내 눈을 의심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브뤼헬 때문이었습니다.
근래에 내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알브레히트 뒤러, 아르킴볼도, 히에로니무스 보스, 그리고 브뤼헬. 그런데 그중에 브뤼헬이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내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