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동 원림 숲자연의 숲속에 사람의 거주 공간이 조화로움을 이루고 들어서 있다.
정윤섭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본래적 특질이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도록 자연을 조영할 줄 알았다. 그래서 산수자연이 뛰어난 곳에 별서를 짓고 자연을 조영하며 살았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원림'이라 한다.
정다산이 찾은 백운동 수, 석, 송, 죽, 월 자연의 벗 다섯 가지를 읊으며 산중신곡을 썼던 고산 윤선도는 금쇄동을 꿈속에서 얻은 기쁨을 '초득금쇄동'이란 시로 노래했다. 이곳을 발견한 이담로도 아마 고산이 금쇄동을 발견했을 때와 같은 기분이 아니었을까.
'백운동 정원'은 조선시대 우리나라 전통 원림의 백미를 보여준다. 그래서 담양 소쇄원, 완도 보길도와 함께 호남지역의 3대 원림 중에 한 곳으로 평가받는다.
백운동 원림은 신명규, 남구만, 임영, 김창흡과 같은 명사들이 찾아와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며 원림 속에서 시를 읊고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이들 중에는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정다산과 해남 대흥사에 기거하고 있던 초의선사도 있었다.
다산은 1812년 9월 12일 제자들과 월출산 등정을 했다가 내려와 이곳 백운동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그리고 이곳의 자연에 반해 백운동 12경시 연작을 지었으며, 초의에게 <백운동도>와 <다산도>를 그리게 하였다. 다산은 직접 쓴 시를 합첩한 <백운첩(白雲帖)>을 남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