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 기동대대원들이 지난 2008년 8월 5일 저녁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 앞에서 '부시 방한 반대'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을 강제해산 시키기 위해 색소가 들어간 물대포를 발사하자 방인성 광우병기독교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이 시위대 앞으로 나와 몸으로 저지하고 있다.
유성호
- 교회 개혁을 어떻게 했나. "성터교회는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에 있다. 전태일 열사가 활동한 청계 피복과 동대문 시장이 가깝고, 동네에는 하청을 받은 작은 공장들이 많다. 우선 지역 사회 현안을 파악한 뒤 소년소녀 가장, 홀로 사는 노인, 장애인 등을 돕기 시작했다. 종로구청과 창신동 주민센터에 찾아가 동네 주차 문제와 쓰레기 문제 등을 협의한 뒤 해결하고, 사회 복지 사각 지대에 있는 차상위 계층 자녀의 학비를 지원했다. 결손 가정과 폭력 가정 등의 피해자를 치료해주고 경찰서에 동행해줬다.
그렇게 했더니 가정 폭력 피해자인 한 여성이 울면서 '고맙다, 이렇게 해준 사람이 없었다'고 고마워했다. 교회의 빈 방은 가정 폭력 피해자의 쉼터가 됐고, 무연고자 등의 장례식을 대신 치렀다. 가장 감동적인 사건은 동네 망나니로 취급받던 알코올 중독자가 회복된 사건이다. 그의 집은 교회 바로 앞에 있었지만, 교회는 교인이 아니라고 외면했었다. 그의 아내와 큰아들은 사망했고, 작은아들은 가출했다. 교회가 돌봐야 할 딱한 처지였는데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했다.
그의 집을 가보니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 더미였다. 새벽 예배가 끝나면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술에 취해 길에 쓰러진 그를 병원에 데려가면 난동을 부리고, 치료해서 집에 데려다 놓으면 또 다시 술주정을 했다. 몇 년 동안 술주정뱅이 고씨를 돌봤지만, 그에게서 돌아온 것은 '고맙다'는 말이 아닌 '왜 나를 귀찮게 하느냐'는 원망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스스로 병원에 입원한 그가 치료받고 퇴원한 뒤에는 다른 알코올 중독자를 돕는 치유자가 됐다. 믿음과 사랑으로 돌봐주면 어떤 사람이든 회복이 가능하다는 귀한 경험을 했다."
- 목사들이 돈 문제와 여성 문제 등의 추문을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반 범죄자들은 그러려니 하지만 성직자인 목사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거세다. 추문 예방을 어떻게 하나. "시골 교회 목사였던 아버님께서 '목사는 돈, 여자, 명예를 멀리해야 한다'고 철저히 가르쳤다. 한국에선 교인 집에 심방 가거나 결혼식 주례와 장례 예배를 집행하면 목사에게 사례금 명목으로 돈을 준다. 그런데 실상은 촌지다. 교사와 기자에게 주는 촌지와 다르지 않다.
목사는 교회에서 생활비를 받는다. 심방, 주례, 장례 등은 목사가 당연히 해야 할 사역인데 왜 촌지를 주고받는가. 이런 잘못된 관행뿐 아니라 과다한 선물이 오면 마음만 받고 돌려보낸다. 이를 돌려주면 '돈이 적어서 그러느냐', '왜 내 것만 거부하느냐'라면서 교인들이 서운해한다. 어떤 분은 상처받기도 하고, 아내는 결벽증이라고 지적한다.
돈과 명예, 권력 문제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경직된다. 인간적으론 나도 힘들다. 하지만 부패한 한국 교회, 왜곡된 목사와 교인 관계 등을 개혁하겠다고 하나님 앞에서 서원했다. 힘들어도 개혁해야 한다(기자도 서운한 경험을 했다. 지난달 29일 예배 참석 겸 취재차 '함께여는교회'를 방문했는데 방 목사는 점심 시간임에도 필요한 취재와 자료만 건네주고 가라고 했다. 혼자 점심을 먹었다). 여성 교인과 둘이서는 차를 타지 않는 게 나의 원칙이다."
- 교회 개혁이 실패로 끝났다. "목사의 왕 노릇을 개혁하기 위해 목사가 당연직 회장이었던 교회 당회와 제직회, 공동 의회의장을 장로와 집사로 바꿨다. 교회 재정은 투명해졌고, 교회 정관은 개혁적으로 바뀌었고, 교인만을 위한 교회에서 지역 주민을 섬기는 교회로 바뀌자 칭찬받는 교회, 존경받는 교회, 지역에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됐다. 교회는 건강해졌고, 교인들은 행복해했다. 여기까지는 대다수 장로와 교인들이 동의하고 동참했다.
일차적으론 교회 개혁, 그다음은 한국 교회와 사회 개혁이 목표였다. 교회 개혁과 사회 개혁을 통해 정의와 평화의 나라를 만들라고 예수가 지시했다. 그런데 부임한 지 11년 되는
2007년 사건이 발생했다. 2주간 영국을 방문하는 동안 장로들이 내 메일로 해임 권고를 일방 통보했다(방 목사를 따르는 지인들로부터 '쿠데타의 주역들은 보수 정당 지지자인 장로들이었다'고 당시에 들었다). 장로들은 교회 개혁에 대해선 힘들어도 동조했지만, 정치적 반대 입장인 사회 개혁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나를 지지하는 교인들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해임을 거부하면 목사파와 장로파 간의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아버님께서 '목사는 장로든 성도든 누구에게든 져야 한다. 교인에게 이기려고 하지 마라'고 가르치셨다. 교인들은 해임 권고를 무시하거나 거부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아버님의 가르침을 따르기로 했다. 나를 해임한 장로들이 분립 개척을 허락해줘 20여 명의 교인과 함께 개척한 교회가 '함께여는교회'다."
젊은 교인 살리려고 신장 기증... '천사' 아내는 항상 용서한다- '사랑의교회' 건축이 사회 문제가 된 것처럼 과도한 교세 확장과 교회 건축이 사회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반면 가난한 교회들은 전셋집과 월셋집을 전전한다. 하지만 '함께여는교회'는 전세든 월세든 그나마 예배당 건물도 없다. 예배당 없는 교회, 의도는 좋은데 불편하지 않은가. "우리 교회는 세상의 아픔이 교회의 아픔이라고 믿기 때문에, 예배당만이 교회가 아니라 고난의 현장이 교회라고 믿기 때문에, 예배당뿐 아니라 거리에서도 예배를 드린다. 함께여는교회는 예배당을 짓기 위해 헌금을 모으거나 쓰지 않기로 했다. 주일이면 100여 명의 교인이 서울 종로 파고다어학원의 이벤트 홀을 빌려 7년째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감사하고 행복하다."
- 교회들은 왜 재정 공개를 왜 꺼리는가."어둠은 빛을 두려워하고 부패한 곳은 드러나는 것을 꺼리기 마련이다. 교회를 욕망의 도구로 삼는 불의한 목사들이 국가 기밀도 아닌 교회 재정을 쉬쉬한다. 대다수 중대형 교회 목사들은 교회 재정, 행정, 운영을 좌지우지하며 왕 노릇 한다. 함께여는교회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목사로서 나는 지역과 사회를 위해 일하는 사회 선교사다. 내가 고난 받는 이웃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은 교회 공동체의 합의와 참여 때문이다. 교회의 배려 덕분에 교회 재정, 행정, 운영에 관여하지 않는다. 교회운영위원회와 교인들의 참여와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교회가 운영되기 때문에 재정이 투명하고 잡음도 없다."
- 신장을 기증했다. "2004년 9월 1일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 신장 기증을 결심한 것은 신장 투석으로 고통 받는 젊은 교인을 살리고 싶어서였다. 교인에게 직접 기증하면 그 교인이 불편할 것 같아서 다른 분에게 신장을 기증했고, 그 교인은 다른 사람에게 기증받는 릴레이 방법을 택했다. 젊은 교인은 6개월 뒤에 신장을 기증받았다.
내 신장을 받은 분이 누군지는 모르고, 10년째 투석했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수술을 끝내고 입원실에 있는데 그의 누님이 찾아왔다. 만나면 서로 민망할 것 같아 돌아가시게 했다. 신장기증으로 가장 미안한 건 아내다. 당시 아내가 유방암 4기로 투병 중이었는데 결심한 대로 수술했고 지금은 아내도 나도 건강하다. 단식할 때도 그렇고 아내에게 미안한 부분이 많다. 그런데 천사인 아내는 늘 용서해준다. "
"자식 잃고 애통해 하는데...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들 보며 탄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