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 178호인 전등사 대웅전
문희일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위치한 전등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전에 세워진 절이다. 서기 381년에 세운 절이라고 하니 역사가 자그마치 1600년도 더 되었다. 육지도 아닌 섬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 있다니, 어떤 연유로 누가 지었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기록에 의하면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에 고구려의 승려인 아도화상이 세웠다고 한다. 서기 381년에 강화도는 백제의 땅이었다. 다시 말해 강화도가 고구려의 땅이 된 것은 그로부터 100년이나 뒤인 장수왕 63년(475)부터인데, 그보다 훨씬 앞인 소수림왕 때 고구려의 스님이 백제 땅인 강화도에 와서 절을 세웠다니,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백제와 고구려는 한강 유역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고구려의 승려인 아도화상이 백제 땅이었던 강화도에 들어와 절을 세울 수 있는 때가 아니었다. 또 전등사가 세워진 당시(381년)에 백제는 불교를 공인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절을 세울 수 있었으며, 더구나 적국의 승려가 들어올 수 있었는지 의문을 가지는 견해도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를 두고 역사의 지나친 과장이라고 하거나 아니면 창건 연대를 올려서 불교와 전등사를 미화시키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당시 백제는 중국의 동진과 가까이 지냈다. 동진은 불교국이었다. 백제는 동진을 통해 불교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 그 당시에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있던 백제는 삼국 중에서 가장 힘이 세었다. 그래서 고구려의 승려가 들어와서 절을 짓고 불교를 알리는 것에 대해 그다지 개의치 않았을 수도 있다.
백제 땅에 고구려 절이...형식과 전범은 시류의 흐름보다 한 발 늦게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그때도 역시 그러했으리라. 비록 당시에 불교가 나라의 공인을 받지는 못했지만 민간에서는 이미 널리 퍼져있는 상태였을 것이다. 당시 사회, 문화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퍼져있는 불교를 받아들여 왕권의 강화를 꾀했다고 본다면 전등사의 창건 연대와 관련된 의문들이 납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