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서 벌어지는 결혼식전 행사
김소연
중국 결혼식은 예식장에서 하는 1·2부가 전부는 아니다. 행사는 결혼식 당일 아침부터 시작된다. '쨍강쨍강' 날카로운 꽹과리 소리, 둥둥 울려 퍼지는 북소리, 펑펑 터지는 폭죽, 폭죽소리에 놀란 자동차들이 울어대는 소리, 중국 전통 사자춤을 추는 젊은이들이 내뿜는 기합 소리와 지상에 발 내딛는 힘찬 소리... 길일이 낀 주말 아침에 아파트 광장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면 그곳에는 그날 결혼식을 올리는 신부의 집이 있다.
그 개막식이 끝나면 신랑은 자신이 준비해온 웨딩카로 신부와 하객을 결혼식장으로 데리고 간다. 그런데 그 웨딩카의 대수와 종류가 장난이 아니다. 체면을 목숨처럼 여기는 중국인은 무리를 해서라도 비싼 외제차를 빌려서 준비한다. 차가 비쌀수록, 차 대수가 많을수록 체면이 선다. 100만 위안이 넘는 차를 빌리려면, 한 대당 렌트비가 5000위안이 넘는단다. 이런 차를 한 두 대도 아니고 6, 8, 10... 짝수로 빌린다. 가장 인기 있는 차는 역시 붉은색 아우디이고, BMW 컨버터블과 람보르기니도 인기가 많다.
꽃과 리본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웨딩카들이 도로 위를 한 줄로 달리는 것을 보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카퍼레이드가 따로 없을 지경이다. 요즘은 여러 친구들 차를 빌려서 웨딩카로 이용하는 알뜰족도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 젊은이에게 결혼 비용은 대단한 골칫거리다. 듣자하니 주택 마련 비용을 제외한 도시평균 결혼 비용이 10만 위안(한화 1790만원 가량)이 넘는다고 한다. 대졸자 초봉 월급이 보통 3000위안 정도이니, 부모의 도움이 없거나 빚을 내지 않으면 그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다. 그러니 결혼비용이 사회적인 문제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사실 호화 결혼식 문제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개혁개방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결혼식은 단출했다. 정부 산하의 결혼 등록 부서에 가서 결혼 등록을 하면 정식 부부가 되었다. 연회랄 것도 없이 동네사람들과 가까운 친척을 불러 함께 식사하고, 기념품으로 사탕과 담배를 돌리면 됐다. 혼수품도 그저 이불 몇 채만 마련해서 단웨이(单位, 단체·직장 등의 조직)가 제공하는 신혼집에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개혁개방 이후 계획경제가 시장경제로 바뀌면서 결혼식도 시장의 논리를 따르게 됐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사회, 서구 문화의 영향, 한 자녀 정책으로 태어난 소황제와 소공주, 경제력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세태, 뿌리 깊은 체면의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허례허식의 결혼 풍조가 생겨난 것이다.
결혼 시즌이 되면 칭다오 바닷가와 구도심의 독일 조계지는 웨딩 사진을 찍는 예비부부들로 북적인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 금빛 백사장에 새빨간 아우디를 배경으로 하얀 웨딩드레스와 연미복을 입은 연인들이 한껏 폼을 잡는다. 독일풍 고전주의 건축 앞에 선 예비부부는 어느 왕국의 왕자와 공주라도 된 듯 연출을 한다. 그것도 모자라 아예 한국에 와서 웨딩촬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결혼식장은 전문 예식장이 아닌 호텔에서 연회 형식으로 한다.
웨딩사진 찍기도 어려운 농민공들... '벌거벗은 결혼식'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도시 중상류층의 이야기이다. 농촌 주민이나 농민공은 사정이 다르다. 일단 농촌에는 젊은 여자가 귀하다. 아직도 남아선호 사상이 남아 있는 농촌에서는 30년 넘게 한 자녀 낳기 운동이 시행되면서 남녀 성비 균형이 깨졌다.
심한 경우에는, 성별 검사를 해서 여아이면 낙태를 하거나, 성별을 모르고 낳더라도 몰래 죽이거나 버리기도 한다. 반대로 남자 아이는 유괴되어 팔리기도 한다. 태어난 딸들은 자라면 도시로 가서 농민공이 된다. 농촌에 남아 있는 총각들은 신부를 얻기 위하여 여성을 납치하거나 인신 매매단에게 구매하기도 한다. 어떤 마을에서는 납치한 여성과 강제로 결혼한 뒤 그 여성이 도망 갈까봐 마을 주민 전체가 감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요즘은 인신매매 대상이 중국인뿐 아니라 중국 국경과 인접한 동남아시아 여성, 탈북여성에까지 이른다.
도시로 나온 농민공은 대개 출신 지역별로 만나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다. 결혼이라고 해봐야 도시 바링허우들이 하는 결혼식은 엄두도 못 낸다. 대부분 옛날식으로 단출하다. 휴가 때 같이 고향에 가서 가족끼리 식사하고 결혼 등록을 하는 것으로 끝낸다. 간혹 결혼식을 못하더라도 웨딩촬영만큼은 추억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농민공이 있다. 내가 칭다오에서 만난 22살의 동갑내기 농민공 커플은 칭다오 바닷가에서 웨딩촬영을 하기 위해 그동안 모아둔 돈을 탈탈 털었다.
없는 형편에 겨우 기본적인 절차만 밟은 결혼을 두고 생겨난 신조어가 있다. 그냥 듣기에도 춥고 쓸쓸한 기분이 드는 '뤄훈(裸婚, 벌거벗은 결혼)'이다.
간혹 칭다오에 온 한국인이 중국인의 결혼과정을 보면서 오해하는 대목이 있다. 한국은 보통 결혼식을 먼저 하고 혼인신고를 하지만, 중국은 그 반대다. 중국은 결혼 등록 부서에 가서 결혼증명서를 먼저 받는다. 그때 신혼집이 마련된다면 결혼생활을 먼저 시작하고, 결혼식은 나중에 천천히 택일해서 올린다. 이것 역시 개혁개방 이후 생긴 현상이다. '결혼식=결혼'보다는 '혼인신고=결혼'이라는 정서가 더 앞서는 모양이다.
D선생의 결혼식이 6개월 정도 남았을 무렵이었다. 회식자리에서 한·중 교수들이 서로 근황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의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얼마 전 혼인신고를 했고, 지금은 새 집에서 알콩달콩 함께 잘 살고 있다", "결혼식은 늦가을에 치를 것이다"했더니 한국에서 온 교수 한 분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네요. 부모 반대가 오죽했으면 동거부터 했겠어요. 이제라도 결혼을 하게 됐다니 다행입니다." 중국인들은 처음에 '이게 무슨 말이지?' 표정이었다. 한국 유학파인 W선생이 한국 사정을 떠올리며 한참을 웃다가 그 교수에게 설명을 해줬다.
"중국과 한국의 결혼문화는 다릅니다. 중국은 대개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결혼식을 나중에 합니다. 법적인 부부가 된 상태에서 같이 사는 것이니까,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혼전 동거와는 의미가 다르지요."결혼식을 마친 D선생 부부는 신혼여행을 떠났다. 이미 결혼생활을 한 마당에 신혼여행이 뭐 그리 설렐까 싶지만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17일간의 결혼 휴가 기간, 한국에서는 꿈에나 가능한 일이겠지만 이공대에서는 당연한 현실이다. 그 시간을 남김없이 보내려고 그들은 멀리 외국으로 날아갔다. 어렵사리 이뤄낸 그들의 사랑과 결혼을 축하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벌거벗은 결혼(裸婚)'을 하는 다른 젊은이들의 처지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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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이 좋다. 길이 없지만, 내가 걸어가면 길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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