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섬 나의 삶> 책 표지.
오마이북
인기 스타 이효리의 제주 생활이 화제가 되면서 제주도가 '힐링 라이프'의 최적지로 주목받고 있지만, 조남희씨는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당신이 아는 제주는 그 '제주'가 아니다'라고. 귀농 7년 차인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시골에 살아보니 시골은 정말 그런 곳이 아니었다.
전원 속에서의 힐링 라이프를 동경하며 귀농을 하는 사람에게 시골살이는 매스컴에 의해 멋지게 포장된 이효리의 일상처럼 판타지에 가깝다. 그러나 시골이 동경의 대상에서 삶의 전쟁터로 변모하는 순간,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것도 잠시, 이내 주저 앉아버리거나 도시로의 재탈출을 감행하기도 한다.
'레알' 시골은 조남희씨가 살고 있는 서귀포시 대평리처럼 동네에 점빵 하나, 목욕탕 하나, 병원 약국 하나도 없는 깡촌이다. 앞에는 푸른 바다가 넘실대고 뒤에는 한라산 병풍을 둘렀어도 연세 170만 원의 단칸방은 도시의 원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불편한 법이다.
현대의 모든 병은 '넘침'과 '과함'에서 비롯된다고 하던가. 조금만 불편하게 살아보면 내가 이전에 얼마나 소비에 물들어 있었는지 단박에 알게 된다. 20~30분 넘게 차를 타고 읍에 나가 장을 봐야 하는 곳에 살면서 계획적인 소비를 하지 않는다면, 각종 재화의 빈곤에 허덕이거나 매일 차를 쓰다가 기름값 폭탄을 맞을 것이다.
'유기농 라이프'는 또 어떤가. 텃밭에서 각종 채소를 가꿔 먹는다고 하면 금세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텃밭 하나 일궈보면 알게 된다. 농사, 만만하게 봤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것을. 파종부터 수확까지 끊임없이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며칠만 방심해도 잡초가 작물을 덮어버리기 일쑤니 수시로 김매기를 해야 한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쭈그리고 앉아 김을 매보면 그제야 텃밭의 '매운맛'을 실감하게 된다.
의욕 넘치게 텃밭 농사를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일명 '무관심 농법'으로 전환했다는 대목을 읽으니 격하게 공감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혹시 손바닥만한 땅에서 '뭐 그리 힘들다고 엄살인가'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직접 해보시라. 땅을, 농사를, 농부를 왜 스승으로 삼아야 하는지 절로 알게 될 테니.
마을에는 겨우 흉내만 내는 '얼치기 귀농인'들을 지켜보는 눈이 많다. 따지고 보면 다 선생님들이다. 이웃집 어르신에게 부탁해 모종을 얻으며 길러 먹는 방법을 귀동냥으로 배운다. 그러면서 관계를 맺고 점차 마을의 일원이 되어 나간다. 천천히 그렇게 가다 보면 내 집 앞마당 텃밭은 엉망이 될지언정, 예상 못한 수확을 얻는다.
양파철이 되면 엄청난 양의 양파가 대문 앞에 놓여 있고, 옥수수 철이 되면 감당 못할 만큼의 옥수수가 집으로 밀려든다. 시금치, 상추, 얼갈이, 배추, 부추와 같은 채소들은 수시로 마을 분들이 가져다주신다. 아이 출산 때문에 친정으로 가 있는 내내, 잡초로 뒤덮였을 텃밭 걱정이 끊이질 않았는데 막상 집에 와보니 마을 할매들이 김을 다 매 놓아서 깨끗하다. 이런 선물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조남희씨도 그랬나 보다. 셰어하우스를 만들면서 육지에서 온 젊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을 이웃집 어르신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또 어르신들과는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단다. 하지만 특별한 방법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서로 가까워질 만한 시간과 한라산 소주 몇 병이면 됐다. 제주 생활 3년 차, 그녀는 그렇게 마을에 스며들면서 '삶의 터전'으로써 제주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자 비로소 '육지 것'에서 '제주도민'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자신의 성을 쌓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이런 문제들은 별것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제주는 어쩌면 그 제주가 아니다. 제주에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제주 정착의 장밋빛 생활기가 가득한 글에 현혹되지 말라는 소리다...(중략)'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로 와야겠다면 준비가 필요하다. 먼저 제주로 이주한 이들이 가감 없이 전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 철저한 사전 조사가 선행되어야 하고 진정한 '비빌 언덕' 되어줄 현지인들과의 인맥도 중요하다. (213~215쪽)'육지 것들'의 비빌 언덕이 되어 준 '오월이네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