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섬 나의 삶>, 책 표지
오마이북
"소소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진 일상. 불편함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한이 없을 테고, 하나도 불편하지 않다면 그것도 거짓말일 터. 그래서 그냥 즐겁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마음 편히 살자고 온 제주 아닌가."(31쪽)오랫동안 살았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생활 공간을 옮겼을 때는 모든 것이 불편하다. 낯선 공간, 어색한 주변 공기, 어지러운 길들. 이외에도 익숙하지 않음 때문에 짜증이 불쑥 나기도 한다. 더군다나 제주는 다른 곳보다 그 간극이 더 크다. 육지와 제주의 간극만큼, 제주에서 받는 낯섦이나 어색함은 더할 것이다.
저자는 서울에서 누렸던 여러 편의시설과 괜찮은 직장에서 주는 월급을 포기하고 제주에 내려온 만큼 불편함을 즐겁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음식 재료를 사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하고, 배달 음식은 어불성설인 곳. 위치, 방향에 관한 당황스러운 설명 방식에다 고무줄 같은 영업 시간이 가능한 곳. 저자에게 제주는 당황스럽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곳이다.
같은 상처를 내야 스며들 수 있는 곳제주는 섬이라는 지형적 특성과 더불어, 해방 직후 벌어진 4·3 사건의 잔상이 남아 있어 외지인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있다. 참여정부 시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의 활동으로 진상 규명과 정부의 공식 사과가 있긴 했다. 하지만 때 늦은 사과는 한풀이는 될지언정, 모든 상처를 아물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저자 역시 제주로 이주한 이후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한다. 서울에서 친구가 내려와 식당에 갔을 때 한라산을 주문하면서 말이다. 한라산 종류를 설명하려는 점원의 말을 자르고 저자가 "하얀 걸(한라산소주는 19.5도짜리 녹색 병과 21도짜리 투명한 흰색 병이 있다)로 주세요"라고 말했을 때, 점원은 "도민이세요?"라고 묻는다. 저자는 "도민이세요?"라는 질문에서 꺼림칙함을 느낀다.
"뭔가 꺼림칙하다. "도민이세요?"라는 질문에는 '도민=토박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 "서울에서 살러 왔고 제주도에서는 아직 얼마 살지 않은 도민입니다"라고 부연 설명을 해야 할 것만 같다. 제주도가 좋아서 살러 온 내가 느끼는 이런 감정은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하다."(63쪽)제주 이주민이 자연스럽게 제주도민으로 스며들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단지 여행지 제주가 좋아서 이민을 결심한 사람이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제주도가 겪어온 역사의 상처까지 마음에 새길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아무래도 진정한 제주도민이 되기는 힘들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제주는 제주다저자가 제주의 삶을 마냥 동경하고 있는 이들에게 '현실은 이렇다'고 엄포를 놓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제주는 제주다. 아름다운 바다와 우뚝 솟아 있는 오름이 있다. 독특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곶자왈도 있다. 유명한 곳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곳곳의 경관이 눈을 사로잡는다. 알 수 없는 제주만의 맛이 있다.
저자가 '오월이네집'이라는 셰어하우스를 만들어 '제주 이민'을 꿈꾸는 이의 연착륙을 도우려는 것은, 환상적인 여행지 제주의 맛보다 제주 자체의 맛이 더 좋음을 느꼈기 때문이지 않을까. '뭉툭한 경계에 선 서울 처녀'인 저자는 강정마을에 새겨진 글귀를 지도삼아 제주에서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갈 이를 기다린다.
"조상 대대로 제주에 살았다고 하더라도 제주의 자연을 그의 돈벌이로만 여기는 사람은 육지 것이며, 비록 어제부터 제주에서 살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제주를 그의 생명처럼 아낀다면 그는 제주인이다."(140쪽)
푸른 섬 나의 삶 - 서울 여자의 제주 착륙기
조남희 지음,
오마이북,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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