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향원정 설경예쁘다.
하도겸
누군가는 실개천이 바위에 부딪혀 선회하는 곳 부근에 부자가 많이 난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진짜 물이고 용맥은 아닌 듯하다. 가끔 용맥이 터져 물에 흐르고, 그것이 모이는 곳도 있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물에 용맥이 흐르는 것은 아닌 듯하다. 누구는 용맥은 산등성이의 모습이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도인들이 말하는 '득수'는 그나마 조금 알겠지만, 장풍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벅찬 숙제였다.
한 도인은 "하루는 인왕산에 올라 서울 시내를 아무 생각도 없이 보는데 뭔가 두 갈래의 거센 바람이 얼핏 보였다. 용산에서 남대문으로, 남산에서 장충단공원을 거쳐 명동으로 내려오는 빠르고 투명한 바람 기둥이었다.
무서운 속도로 남대문과 서울시청 앞에서 합류한 바람은 광화문으로 바로 몰아쳤다. 마치 3층의 구조를 가진 건물처럼 높고 굵은 커다란 바람이었다. 바람의 맨 아래층은 광화문을 맞부딪혀 그만 넘지 못하고 동십자각부근에서 진입을 시도하는 다른 작은 바람기둥으로 인해 밀려서 세종대왕상을 중심으로 똬리를 틀듯 회오리처럼 선회하며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2층 높이보다 높은 중층의 바람은 광화문을 넘어 경복궁의 근정전과 경회루 그리고 향원정을 지난다. 그러나 결국 신무문을 넘지 못하고 또 다른 담장에 가둬져 향원정을 가운데 두고 선회하고 있었다. 끝으로 상층의 바람은 경복궁의 북문에 해당하는 신무문의 담벽마저 훌쩍 넘어 청와대로 간다. 하지만 북악산을 넘지는 못하고 옛 청와대 중정 주변에서 작은 회오리마저 일으키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양을 도읍으로 삼은 조선시대는 신분제 사회다. 민속이라고 하는 서민 문화(배에 해당), 선비 관료들의 양반 문화(가슴에 해당), 왕족의 궁정 문화(머리에 해당)로 세 가지 신분을 문화와 연관 지어 나눌 수 있을까? 오늘날 풀뿌리 민주주의식의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요구하는 '세월호'관련 시위 등은 광화문에서 주로 이뤄지고 있다. 예전에 세종시로 이전되기 까지 적지 않은 정부종합청사 부근의 공무원들은 출근 전이나 점심 시간에 짬을 내어 경복궁을 산책하곤 했다. 여전히 청와대는 서민은 물론 관료조차도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곳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