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 당시의 만세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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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3·1 운동 현장에서는 수많은 소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시위를 주도했다. 그들은 시위 현장이나 법정에서는 전투적인 투사였지만, 평소에는 시위 현장에 얼씬도 하지 않을 것 같은 평범한 백성들이었다.
일본 측은 한국인의 5%인 110만 명 정도가 만세 시위에 참가했다고 했지만, 한국측 통계에 따르면 참가자는 전체 인구의 10%인 200만 명 정도였다. 이런 대규모 시위가 가능했던 것은 유관순·남동순·한이순·민옥금·황금순·공재익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대거 참여했기 때문이다.
일본 헌병대가 칼을 휘두르고 총을 쏘아대며 개중에는 말을 타고 진압하는 상황에서도 200만 명 정도의 한국인들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무기를 들지 않은 그 수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태극기 하나만 들고 무장 병력에 달려들었는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들이 저항한 것은 토지조사사업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수탈로 삶의 수단인 농토를 빼앗겼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한편,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으로 이 시기 한국인들이 느꼈을 민족적 치욕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고종황제의 사망 소식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모여든 것에서 느낄 수 있듯이, 당시의 한국인들도 지금의 한국인들처럼 고도의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단순히 자기 토지를 빼앗겼다는 개인적 이유만으로 일본에 저항한 게 아니다. 그들을 뭉치게 한 것은 그들에게 민족적 치욕을 안긴 그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1882년에 임오군란(서민·하급군인들의 시장개방 반대투쟁)을 진압할 목적으로 인천에 상륙한 청나라 군대가 용산에 주둔기지를 세운 뒤로, 조선인들은 외국 군대가 수도 코앞에 주둔하는 현실에 치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1884년에 김옥균이 갑신정변을 일으켜 청나라 군대와 싸운 데에는 그 같은 치욕을 갚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
용산 점령군에 대한 한국 서민들의 저항용산에 주둔한 청나라군을 보며 치욕을 느낀 한국인들은, 청나라군이 물러간 뒤에 일본군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또다시 목격했다. 그래서 그들은 청나라에 대해 가졌던 분노를 일본에 대해서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청나라가 주둔기지를 만들 당시, 한성 사대문 주변에서 전략적으로 가장 유리한 곳이 바로 용산이었다. 철로나 자동차가 없었던 시절이므로 수로를 통해 청나라-인천-한성을 가장 빨리 연결하는 동시에 언제라도 궁궐을 제압할 수 있는 위치는 한강에서 가까운 남대문 밖 용산이었다. 그래서 용산만큼 외국군이 주둔하기 좋은 곳은 없었다.
그런 이유가 어느 정도 작용하여, 1900년에 세워진 경성역(서울역)도 용산 가까운 곳에 위치하게 되었다. 바다를 통해 인천에 들어온 외국군이 철로를 거쳐 한성 코앞에 도착한 뒤 언제라도 궁궐을 제압하기 좋은 곳에 한국 제1의 철도역이 세워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요지(要地)의 근처에 있는 주둔기지를, 청나라군에 이어 일본군이 차지했다.
그런 이유로 인해 서울역과 용산기지가 이웃하고 있는 장면을 보면서, 당시의 한국인들도 치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같은 민족적 치욕에 대한 자각이 토지 수탈 등으로 인한 경제적 상실감과 겹쳐지면서 3·1운동이라는 거대한 저항운동이 발생하고, 그런 저항을 평범한 사람들이 주도한 것이다. 한마디로, 3·1 운동은 용산 점령군에 대한 한국 서민들의 저항이었다.
따라서 '대한독립 만세'는 일제강점기에만 유효한 구호가 아니다. 수도 서울 근처에 외국 군대가 주둔하고 그 외국군이 한민족의 경제·정치적 주권을 훼손하는 한, '대한독립 만세'는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런 치욕이 제거되지 않는 한, 유관순·남동순·한이순·민옥금·황금순·공재익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일은 언제라도 재현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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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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