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란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른 봉우리
정수현
이상합니다. K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처음에는 밑에서보다 훨씬 추운 밤을 보내서 힘들어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괴로워하는 K의 상태는 고산병 증후였습니다. 머리를 감싸 안은 K는 잠을 못 잘 정도로 고통을 느꼈고, 고개를 숙였다가 들어 올릴 때는 극심한 두통을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못 올라갈 수도 있겠다'라는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증세가 고산병임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K는 어지간해서는 '못 하겠다', '힘들다'라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성격에, 집이 있는 성남에서부터 상암 월드컵경기장까지 사이클로 왕복을 할 정도로 좋은 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번 트레킹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저질 체력의 나에게 먼저 신호가 오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지요.
고산병은 보통 해발 3000m 정도에서부터 증후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높이 올라갈수록 고산병의 증세는 누구에게나 잠복한다고 합니다. 고산병 증세는 극심한 두통, 현기증, 구토, 무기력 등의 형태로 드러납니다. K는 '뇌를 쥐어짜는 아픔이 느껴지며, 아무 소리도 안 들어오고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오직 살아야겠다는 생각과 행동만이 나왔다'고 고산병의 느낌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전문가들은 3000m 고도를 넘어서는 숨이 가빠지면 걷는 속도를 늦추고, 쉬는 중에 물을 조금씩 자주 마시라고 권합니다. 마늘 수프, 생강차, 비아그라 등이 고산병을 완화해 준다고 하기에, 고산 트레킹 도중에 만나는 한국 사람들끼리는 '약 챙겨 드셨어요?'라고 안부를 묻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현대 의학이 고산병에 대해 정확한 원인 규명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심폐 지구력이 좋은 마라톤 선수와 동네 뒷산에도 헉헉거리는 60대 남성이 함께 고산에 오른다면 마라톤 선수가 60대 남성을 업고 내려와야 할 듯합니다. 하지만, 정반대의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래서 히말라야를 여러 번 다녀온 지인은 성공적인 트레킹을 위해 필요한 것은 고산병을 이길 수 있게 기도를 많이 하는 수밖에 없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나의 기도가 K의 기도보다 강력했던 걸까요? ABC까지 나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고산병에 콜라가 도움... 데우랄리부터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까지
다행히 K는 아침에 마늘 수프를 먹고, 생강차를 마시고, 몸을 조금씩 움직이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려 우리의 산행은 계속될 수 있었습니다. 눈이 부시다 못해 눈이 시린 파란 하늘과 햇살을 받으며 천천히 천천히 발걸음을 옮깁니다. 데우랄리(3230m)에서 점심식사를 합니다. 콜라를 마셨습니다. 평소 좋아하지 않는 탄산음료지만, 고산병에는 콜라도 도움이 된다고 해서 보양 차원에서 마셔 두었습니다.
이때까지는 괜찮았습니다. 컨디션이 많이 떨어진 K와 보행 속도를 맞추어 준다고 먼저 걷다가 기다리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오후부터는 나에게도 문제가 생깁니다. 데우랄리부터 오늘의 목적지인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이하 MBC)까지는 정말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