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한창이던 어느 해 어느 마을에서 만난 두 형제, 그들의 인사(2012년 독일)
배수경
작고 어여쁜 마을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는 길이었다. 다른 이들은 어느 때에 여행을 가고자 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먹먹해지는 일상의 세계에서 잠시나마 나를 잊고 좀 더 먼 거리에서 스스로를 바라보고자 할 때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니 이곳에서의 행복이 두 발을 땅에 굳건히 디딘 듯 좀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면, 나는 그렇게 자주 캐리어를 챙겨 들으려 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여행을 시작하는 나의 얼굴은 대체로 미로들 사이를 한참동안 헤매다 체력조차 고갈된 이의 축처진 어깨와 닮아 있을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그날도 나의 마음은 처음 만나는 거리들만큼 낯설고 팽팽한 긴장의 끈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앞에 불쑥 한 작은 생명체가 나타났다. 청바지와 하늘색 가디건을 입은 7살 즈음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였다. 그 아이는 입고 있는 옷과 마치 색을 맞추기라도 한 듯 푸른색 계열의 줄무늬가 들어간 공을 땅에 튀기며 내게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통. 통. 통.
비닐로 만들어진 공의 탄력이 그렇게 조용한 골목의 대기 속으로 생기 있게 울려퍼지더니, 갑자기 아이가 내 방향으로 공을 보냈다. 이제 막 처음 본 그 아이가 던진 공을 받아들고 내가 꽤나 난처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데도, 아이는 연신 방글 방글 웃기만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