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곡 <주문>으로 2014년 이용석가요제에서 금상을 받은 콜밴. 연주와 곡 작업을 도와준 '푼돈들'과 함께 기념촬영.
임재춘
한번은 우스갯소리로 '콜밴의 음악사적 가치가 무엇인가'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작년 8월 30일 '저항문화제' 자리에서였다. 당시 공연장의 게스트는 콜밴의 그 가치가 "다른 밴드에게 자부심을 주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관객들은 실수 연발 콜밴의 그간 무대를 연상하며 크게 웃었다. 이어서 콜밴의 보컬 이인근은 게스트에게 반격의 답을 했다. "그래도 우린, 자작곡이 있는 밴드다." 그러고 나서 두 번째 자작곡, 사실상 첫 번째 자작곡에 해당하는 <주문>을 연주했다. 관객들의 박수가 넘쳤다.
기나긴 농성은 할 일이 없는 서늘한 침묵의 시간과 함께한다. 아무리 결연한 의지로 싸운다 한들 매일이 집회 같을 수 없다. 하루 일정을 마친 늦은 저녁 농성장은 어둡고, 때론 춥거나 더운데, 그 시간은 TV도 없이 대화가 중단된 무료한 시간이다. 게다가 콜텍이든, 콜트든 두 기타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은 조합원 수도 많지 않으니 집회 대오를 갖춰 사회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도 만만치 않다.
그들에게 밴드의 결성은 기타 노동자란 이미지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중소사업장 장기 농성자들의 영리한 선택이기도 하다. 밴드라면 집회를 잡지 않아도,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밴드 연습으로 집회나 문화제가 없는 침묵의 시간들이 훨씬 활기차질 수 있었다.
그렇다고 밴드를 결성하고 유지하는 일이 마냥 자연스럽고 쉬운 일은 아니다. 박치 수준에 가깝던 그들의 연주는 연습량과 상관없이 실수들로 채워졌다. 아무리 아마추어라 해도 관객 앞에서 수차례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공연 후 서로의 실수에 못마땅해 하는 말들을 하고, 또 그것이 화근이 되어 싫은 소리들을 주고받을 때도 많았다. 콜밴이란 밴드를 결성하기 전까지 그들이 어떤 처절한 몸부림을 해왔는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공연 일정이 많은 그들에게 음악만 하고 투쟁은 언제 하냐는 삐딱한 시선을 보낼 수도 있다.
게다가 콜밴은 누구나 아는 카피곡을 불렀다. 물론 그들이 '이치헌과 벗님들'의 노래, '송골매'의 노래를 부를 땐 어딘지 더 구슬퍼지고 왠지 모르게 처연하다가 돌발적인 실수들이 주는 웃음은 애절하게 웃겼다. 그래서 환호도 많이 받아왔지만 카피 밴드의 한계는 당연히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소위 말하는 '민중가요'도 콜트-콜텍 8년의 농성 이야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결국 농성 9년째로 접어든 그들의 삶을 고스란히 대중에게 전하는 방법은 '자작곡' 뿐이다.
자작곡이 절실해지기 시작한 때, 본격적으로 그 필요가 이야기되기 시작한 것은 작년 6월 말이었다. 콜텍 사측과의 법적 싸움에서 모두 져버린 그 순간, 해야 할 말이 오히려 넘쳐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들이 싸움을 멈출 수 없다고 마음 먹었다 한들, 내부에서 기어나오는 패배의식을 막을 수 없고 외부에서 들리는 회의 섞인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던 때. 그래서 더욱 콜밴의 무대가 소중해지는 시점이기도 했다. 작년 여름 끝 무렵부터 자작곡 만들기는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