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21일, 이인근 지회장이 양화대교 북단 송전탑에 올랐을 때의 모습. 이날 이인근 지회장 송전탑 위에서 삭발을 했다.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
이인근 지회장에게 왜 하필 양화대교였냐고 물었다. 그는 대전에는 올라갈 만한 높은 곳이 없었고, 쉽게 연행되는 것을 피하고 싶었고, 국회가 잘 보이는 곳이라 양화대교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곳에는 지하철도 지나간다니 서울 시민들에게 잘 보일 것 같았다고 했다. 그렇게 멀리 있는 국회에서 보라고, 시민들이 이 상황을 알아달라고 그는 10m 길이의 플래카드와 함께 자신의 몸만 한 배낭을 메고 45m 양화대교 부근의 송전탑에 올랐다. 2008년 10월 15일 새벽 4시, 경찰이 달려올 수 없는 시간, 조합원들이 잠들었을 시간에.
그가 송전탑에 오른 이유는 어떻게든 박영호 사장을 대화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서였다. 사측과의 교섭 성사, 그것이 목표였다. 해고농성 2년째, 각종 해고 지원금들이 말라가고 조합원들이 지쳐갈 즈음이었다. 그가 고공농성과 함께 곧바로 단식농성에 들어간 것은 미리 그의 마음에 계획된 것이었다. 그만큼 고공농성은 그에게 끝장 같은 것이었다.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스마트폰도 없던 그때는 아침에 눈을 떠 아래의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고, 간간이 찾아오는 사람들과 통화를 하고, 책을 보고, 또 다시 잠이 들거나 허공을 응시하는 시간들이었다.
세상은 그의 의지만큼 굴러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알아주지도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가 11월 13일 다시 땅으로 내려올 땐 10Kg 넘게 줄어든 몸뚱이와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것에 대한 착잡함, 남은 나날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서였다.
송전탑 위에서 그는 배고픔보다도, 고독함보다도 부모님이 그곳을 찾아왔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허위허위 허공으로 흔드는 어머니의 손을 멀리서 보는 것은 억장이 무너지는 아득한 슬픔이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이러다 떨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칠 때도 송전탑 아래 부모님을 볼 때만큼 아찔하진 않았다고 했다.(관련기사 :
[농성일기 10]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아버지는 오늘도 웁니다)
정리해고로 직장과 직장동료와 괴리되었다. 거리농성으로 가족과 멀어졌다. 급기야 굴뚝이나 송전탑, 전광판을 오르는 일은 세상에서 밀려나는 자들의 슬픈 관행이 되었다.
그곳에 오를 때도, 그곳을 내려올 때도 이 세상이 너무나 야속하여 더 이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심정이었다고 이인근 지회장은 회고한다. 지금도 이곳저곳 허공에 집을 짓고 있는 사람들은 같은 심정 아니겠냐고 한다. 또한 고공에 오른 사람의 힘겨움도 크지만 땅에 남아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은 더욱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차마 말리지 못하고 그 높은 곳에 오르게 한 죄책감은 얼마나 클 것인가. 고개를 젖히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막막함에 무기력함은 얼마나 깊게 잦아들 것인가.
'함성'이나 '구호' 아닌 '비명'에 더 가까워진 고공농성높은 곳에 오르는 것이 신에 대한 도전이고, 탐욕이라고 꾸짖던 때가 있었다. 바벨탑, 이카로스… 하늘로 치솟는 모든 것은 인간의 승리이고, 성장의 상징이라고 일컬어지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 높은 곳에 욕망이 아니라 절망으로, 성장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오르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생겨난다.
한때는 골리앗 전사라는 호칭과 함께 고공농성이 경영주의 탐욕에 맞선 영웅적인 저항을 상징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2008년 10월과 2014년 이 겨울의 고공농성 주체는 비정규직, 장기농성자, 중소사업장의 해고자들이며 지금의 고공농성은 '함성'이나 '구호'보다는 '비명'에 더 가깝다고 여겨진다. 이 끔직한 지옥을 제대로 보아달라는 허공에 매달린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오늘(12월 28일)로 콜트 콜텍 해고자들의 농성은 2888일차가 되었다. 그리고 허공에 오른 다른 사업장의 농성자들을 바라보며, "내가 다시 저 곳에 오를 수도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이인근 지회장의 모습은 공허한 듯 담담했다. 참으로 끔찍한 일들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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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만에 시체같은 모습으로 온 그,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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