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9일 경기도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사업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환경부 공무원, 경기소방재난본부 등으로 구성된 합동 감식반이 현장감식을 벌이고 있다. 이 사업장에서는 불산 가스가 누출돼 1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하는 등 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모든 국민은 모든 위험에서 안전할 권리가 있다."지난 5월, 국회의장 직속 헌법개정자문위원회가 발표한 헌법개정안의 한 내용이다. '안전권'을 헌법상의 기본권으로서 명문화하겠다는 취지이지만, 사실 그 전부터 생명·신체의 안전권은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되어 왔다. 이렇듯 안전은 서비스가 아닌 권리다. 국가에게 안전의 보호를 요구할 수 있고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겐 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는 우리의 안전권이 처한 현실을 아프게 드러냈다. 재난 상황이 닥치면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국가 시스템이 기민하게 작동하리라는 막연한 신뢰가 있었지만, 허상이었다. 국가의 안전관리체계는 형편없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아니 그러한 체계가 과연 존재하느냐는 의문부터 갖게 되었다.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는 국가의 관리체계가 대대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안전을 각자, 능력껏 도모해야 하는 딱한 처지에 계속 놓여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안전을 도모할 수는 있는가. 오지 않은 위험을 예방하거나 대비하고, 이미 닥친 위험에 대하여는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는가. 개개인의 의식과 능력은 차치하고라도 각자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권리는 온전히 보장되어 있는가.
이러한 의문은 마땅히 '우리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위험에 대해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알 수 없는 위험에 대하여는 예방하고 대응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주변에 존재하는 위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먼저 거주지의 위험을 보자. 2013년에만 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총 87건이나 있었고 80여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올해도 2월에 남양주에서 일어난 빙그레 공장 암모니아 가스 누출사고(1명 사망, 2명 부상)에 이어 최근 수원에서 일어난 삼성 공장 폐수 누출 사고(1천여 마리의 물고기 폐사)까지, 화학물질 노출로 인한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거주지 인근에 위치한 공장에서 어떠한 화학물질을 사용하고 유통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기업들이 영업 비밀이라 주장하기 때문이다.
먹거리의 위험은 어떠한가. 먹거리의 안전과 관련하여 세계적으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가 GMO(유전자 조작 생물)이다. GMO의 위험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우려와 경고가 전해지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어느새 세계 2위의 GMO 수입대국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국내 식품 기업들이 GMO를 사용하고 있는지, GMO 식품의 수입여부를 심사하는 식약처 산하 '유전자변형식품 안정성 심사위원회'는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는지조차 알 수 없다. 식품 기업들은 관련 법상 공개할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식약처는 심사의 공정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터의 안전은 또 어떠한가. 반도체 공장에서는 공정의 특성상 20여 종의 발암물질과 30여 종의 생식독성 물질 등 수많은 유해물질에 노출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에 제보된 백혈병, 뇌종양 등의 중증질환에 걸린 반도체 노동자 수만 해도 200여 명에 이른다.
하지만 그 공장의 노동자들은 자신이 취급하는 화학물질의 성분·유해성 등 산업안전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정보들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들이 안전보건에 관한 교육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많은 정보를 은폐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