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헌장 반대자들 "사회자를 교체하라"인권재단 사람 박래군 상임이사가 서울시민인권헌장(안)공청회를 앞둔 지난 11월 20일 오후 서울 특별시청 후생관에서 발언을 하려고 하자 한 인권헌장 반대 시민이 마이크를 뺏으려 하고 있다. 반대 입장의 시민들은 "박래군 상임이사는 동성애를 지지하고 있다"며 "공청회 사회자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희훈
시민들이 무리한 결정을 내린 것도 아니다. 그냥 헌법(11조 1항)과 법률(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의 3,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5조, 군에서의 형의 집행 및 군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6조)에 규정되어 있는 것과 똑같이 차별금지조항을 만들었을 뿐이다 (*최종적으로는 '성별 정체성'이 차별사유로 추가됐다). 서울학생인권조례, 광주인권헌장, 서울성북주민인권선언에 담긴 수준과도 차이가 없다. 국제기준대로 한 것이고, 법대로 한 것일 뿐이다.
대한민국은 유엔이사회 이사국으로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했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에 대한 유엔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에도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을 넣는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에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포함되어 있고,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은 "현행법이 이미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런데 인권 변호사 출신 박원순 시장은 '헌법과 법률'에 적혀있는 사항을 그대로 규정한 인권헌장조차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서울시가 시민위원회에 위임해서 '시민'이 만든 인권헌장을 '시민참여'의 아이콘 박원순 시장이 폐기시킨다고 한다. 이 사태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 가지 더 우려되는 점은, 이 사태로 인해 박원순표 시민참여모델이 위기를 맞게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합의 없으면 폐기"라는 이번 서울시의 방침은 매우 나쁜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원순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빌미가 없다. 이제는 아무 시민참여기구에나 들어가서 무조건 반대하고, '합의 안되었으니 폐기하라'고 외치면 된다. 인권헌장이라는 선례가 생겼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인권헌장 찍고, 도시계획헌장으로!'라는 글이 인터넷에서 공공연하게 나온다. 이런 사태를 다 감수하겠다는 뜻으로 내려진 결정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인권단체들뿐만 아니라, 여성단체들, 민주노총, 그리고 그가 설립한 참여연대도 인권헌장을 선포하라고 촉구했다. 오늘날 시민사회의 성장에는 시민운동가 박원순의 공이 지대했다. 그렇게 성장한 시민사회가 그에게 강하게 경고를 보내고 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이 국제사회에 소개될 때 어떤 불상사가 연출될지는 국제사회의 동향에 밝은 박 시장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시민들의 소소한 질문에도 하트를 날려주던 그가, "시민들이 만든 인권헌장을 왜 선포하지 않냐"는 시민들의 항의에는 아무런 답이 없다.
책상 한 편에는 4개월 동안 시민위원회 회의를 위해 사용된 서류뭉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아직 치우지 않았다. 인권헌장이 선포되고 나면, 시민위원회 백서도 써야 하고, 인권헌장 해설서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함께 고생한 시민위원들과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고, 최고의 행정지원을 해준 서울시 공무원들에게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아직도 내 손에는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낸 위대한 작품, '서울시민 인권헌장'이 들려 있다. 박원순 시장이 '시민이 만든 인권헌장을 폐기한 시장'으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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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인권헌장 폐기... 이해 못할 박원순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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