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외치는 성소수자들인권헌장을 지지하는 성소수자들이 서울시민인권헌장(안) 공청회를 앞둔 20일 오후 서울 특별시청 후생관에서 인권헌장 반대자들에게 둘러싸여 소리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저희는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렌스젠더입니다. 서울시민입니다. 성적소수자 인권은 인권헌장에서 존중받아야 합니다.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고 주장했다.
이희훈
서울시민 인권헌장이 폐기될 위기에 처해있다. 서울시 인권헌장 제정 시민위원회(안경환 위원장·아래 시민위원회)가 인권헌장 최종안을 표결로 통과시켰지만, 서울시가 전원 합의를 요구하면서 최종 공포가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길래 상황이 이 지경이 된 것일까? <오마이뉴스>는 세계인권선언일(12월 10일)에 공포할 계획이었던 서울시민 인권헌장 전문을 공개한다. 설사 공포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과연 무엇 때문에 문제가 됐는지, 그렇게 심각한 문제였는지, 이런 결론이 날 수 밖에 없었는지, 시민들이 전체를 놓고 판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나중에라도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총 50개 조항으로 이뤄진 헌장은 전문과 일반 원칙 5개 조항, 참여와 소통 분야 6개 조항, 안전과 건강 분야 15개 조항, 환경과 문화 분야 9개 조항, 더 나은 미래 분야 6개 조항, 실천 분야 9개 조항으로 나뉘어 있다.
이중 지난달 28일 6차 회의에서 50개 조항 중 45개가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큰 이견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5개 조항은 일부 위원이 반대했고, 대표 토론을 거쳐 표결로 처리됐다. 5개 조항은 4조, 15조, 42조, 45조, 46조다. 알려지기로는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동성애 반대를 내세워 극렬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모든 조항이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가장 큰 이견을 보인 1장 4조는 차별 금지 사유를 규정한 조항이다. 이 조항에는 '성별, 종교, 장애…(중략)…성적지향 및 성별 정체성' 등의 사유가 구체적으로 들어가 있는데,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성적지향'이라는 단어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인권헌장 전체를 반대해 왔다. 우회적으로 차별 금지 사유를 포괄적으로 규정해 '서울 시민은 누구나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로 적시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표결 결과는 원안 확정이었다.
또 '안전에 대한 권리'를 담은 3장 15조가 반대에 부딪힌 상황도 4조와 비슷하다. '폭력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에 처한 시민을 특별히 고려한다'의 세부 조건에 '여성, 아동, 어르신·약자,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을 적시했는데, 마찬가지로 성소수자 등의 언급을 반대하는 의견이 나왔다.
나머지 세 개 조항은 헌장을 실천하는 서울과 관련한 조항으로, 반대의 맥락이 위 두 개 조항과는 좀 다르다. 상위법과 관련한 42조는 우리나라 실정과 문화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로, 또 인권헌장 이행을 담은 45조·46조는 서울시 인권기본조례와 중복된다는 이유로 삭제 요청됐으나 모두 원안으로 확정됐다.
다음은 서울시민 인권헌장 전문이다. 문제가 된 5개 조항은 굵은 글씨로 표현했으며, 짧은 해설 각주를 붙였다.
서울시민 인권헌장
<전문>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자 21세기의 중요한 세계도시이다. 이러한 거대 공동체의 조화, 상생, 안전, 복리를 위하여 모든 이가 합의할 수 있는 가치기준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크다. 그것을 위해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권 원칙, 세계인권선언 및 국제인권규범에 제시된 보편적 인간 존엄성의 원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 600년 이상의 문화 전통이 깃든 서울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 도시의 역사성과 상징성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그것을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방향으로 변화, 발전시킬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자각한다. 서울은 20세기를 거치면서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내고 오늘날 자랑스러운 번영과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외적 성장과 함께 많은 사회문제가 발생하여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도전을 극복하고 내적 성숙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가치를 추구하는 도시상을 새롭게 정립해야 하겠다. 서울은 우리에게 단순히 주어진 공간이 아니다. 서울은 우리가 함께 나날이 만들어 가는 생활공간이다. 서울의 모든 구성원은 이 도시의 공동 창조자이자 예술가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공성과 공동선에 기반하여 모든 거주민이 차별 없이 인간적 존엄을 보장받으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하는 것이 인권도시 서울의 기본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서울에 사는 모든 사람은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자세, 공동체의 주인 의식, 그리고 스스로의 권리뿐만 아니라 타인들 특히 약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정신을 재확인하고 다짐한다. 또한 서울시의 공직자는 시민의 정당한 권리를 섬기고 충족시킬 의무가 있음을 재확인하고 다짐한다. 이 같은 약속을 위해 우리는 시민들의 참여로 함께 만든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제1장 일반원칙 제1조 서울은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이며, 시민은 서울의 주인이다. 제2조 서울시민은 서울시정에 참여할 권리와 공공서비스를 차별 없이 향유할 권리를 갖고 서울시는 이를 보장할 책무를 진다. 제3조 서울에 살거나 머무는 모든 사람은 존엄한 시민으로서 권리를 갖는다. 제4조 서울시민은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출산, 가족형태·상황, 인종, 피부색, 양심과 사상,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 학력, 병력 등 헌법과 법률이 금지하는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 기자 주 :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반대한 대표적인 조항. 차별 금지 사유를 규정하는 방식을 포괄적으로 규정해 '서울 시민은 누구나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문구로 하자는 의견과 대립됐으나, 위의 안으로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