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교외선 기차길 옆에서 마주친 목줄 풀린 동네 개들의 고마운 무시.
김종성
경의선 전철에 애마 자전거를 싣고 대곡역(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장동)에 내렸다. 서울에서 채 1시간도 안 걸려 왔지만, 대곡역에 내리자 막 수확을 마친 배추밭과 단층의 아담한 집들이 맞이하는 동네다. 대곡역은 1962년 개통되었던 교외선 기차역이었다. '교외선'이라는 왠지 여행심을 부르는 명칭은 2004년 교외선 기차노선이 사라지면서 운명을 함께 하게 된다. 인터넷 지도에는 아직도 교외선 기차길과 역명이 남아 있는데 화물수송용 열차가 지나가서 그런 건지, 아니면 교외선 기차가 다시 살아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대곡역에서 교외선 기차길 옆 도로를 따라 대정역, 원릉역, 삼릉역을 차례로 지나면 공릉천이 나온다.
낙엽이 쌓인 채 길게 이어진 교외선 철로에 가을의 끝자락 분위기가 물씬하다. 철로에 놓인 오래된 침목 하나하나에 신촌에서 교외선 기차를 타고 유원지가 있는 장흥역 혹은 일영역까지 짧은 여행 겸 데이트를 했던 추억이 아련하게 배여 있는 듯하다. 지붕이 있는 야외 대합실 나무 벤치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이 즐겁고 또 아쉬웠다. 그 땐 스마트폰이 없어서 말이 끊기고 어색할 때를 대비해 월간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세상 속 별별 이야기, 유머 시리즈 등을 열독해 두었다가 그녀에게 들려주곤 했다.
자전거 탄 이방인을 보고 용맹하게 짖어대는 작은 개가 지키고 있는 주택가 앞 교외선 대정역은 동네 주민들의 쉼터가 됐다. 고등학생 둘이 앉아 도시락을 까먹고 있길래 다가가 모르는 척 기차가 언제 오는지 물었더니, 손사래를 치며 기차가 오지 않는 이유를 열심히 설명 해준다. 한적하고 쓸쓸한 대정역 기차길과 무인 철도 건널목 주변엔 이 뻔한 세상이 되기 십상인 '이 편한 세상'을 만드느라 대단위 아파트 건설이 한창이다.
그런 철길가에서 옛날 교외선 기차가 지나다닐 시절에 있을 법한 가게를 만났다. '기차길 옆 국수집', 이 식당의 오래된 여닫이 나무문은 열고 들어가면 8,90년대로 돌아갈 것만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김을 뿌려 넣은 멸치 육수가 맛깔난 잔치국수로 늦은 아침을 먹고, 교외선 철길가에 있는 보기드믄 식당을 나와 한갓진 길을 계속 달리는데 저 앞에서 자전거 여행자의 천적, 목 끈 풀린 동네 개가 그것도 두 마리나 출몰했다.
급정지를 하고 자전거 안장에서 내려 시선을 돌리고 딴 짓을 하는 척하며 눈치를 살폈다. 시골에선 사람을 물지 않는 순한 개는 가끔씩 풀어 키우곤 하는데 얘들도 그런 개였다. 바짝 긴장한 자전거 여행자는 아랑곳없이 지들끼리 동네 곳곳을 냄새 맡으며 돌아다니느라 바쁘다. 무시를 당하게 되면 대부분 기분이 나쁜데 이런 '개무시'는 드문 행운이다.
하천을 가른 보기 드문 인공구조물의 정체 '방어선'